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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11월은 영원히 내게 남으리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가 부른 그리스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에 ‘11월은 영원히 내게 남으리’ 라는 노랫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영원히 남은 11월은 올해에도 다시 돌아와 있고, 그 노랫말을 듣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살아온 세월 속의 애상을 잔잔한 파문으로 또 일깨워줄 것이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 속에는 조국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애상이 어려있다. 일을 할 때에나 운전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에도 항상 혼자인 듯한 삶이어서 더욱 그렇다. 자녀들이 대학 캠퍼스로 또는 군대로 집을 떠나 둥지를 옮겨가는 때를 계기로 갑자기 넓어진 공간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 이별을 하나씩 둘씩 경험하면서, 경주를 하듯이 앞으로만 달려가던 길의 끝이 새삼 실감되는 인생의 계절은 11월과 닮아있다.

11월은 그래서 마감을 예감하면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달이다. 달리는 앞차의 차창을 소용돌이 치며 휘돌아내리는 낙엽들을 보면서 쓸쓸한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의 감상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처한 천차만별의 상황이나 꿈꾸며 기대하는 내용도 10인10색으로 다른 인생여정에서 조우하는 처음엔 그저 낯설기 만한 얼굴의 사람들을 한순간 연대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감상이라는 공통인자다. 질병이나 파산, 또는 수감생활의 절박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와 의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목숨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감상의 요소들이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게 하는 감상은 그래서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스미는 가을에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나 고독은 제거되고 회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혼자인 시간이 많아서 사색이 가능하고, 외로움이 깊어서 절대자에 대한 신뢰 또한 깊어 갈 수 있는 이들의 11월은 만추의 향기가 더해 갈 것이다. 아직도 혼자 있는 시간은 회피의 대상이며 불편함과 불행의 이유일 뿐이라고 생각되는 이가 있다면 정신과 의사이자 임상심리 치료가이면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인 엠 스캇 펙이 한 말을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은 속 깊은 불편함, 불행, 불만족한 느낌이 드는 때다. 그 불편한 심기로 인해 안락함과 구태의연한 삶에서 벗어나서 참된 길과 해답을 모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가 부재하고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없는 사람의 삶은 황량하다. 그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사람의 삶은 빤하고 경박하고 지루하다. 일말의 감상조차 없이 실용적이기만 한 사람이 강조하는 가치관과 생활은 흑백논리로 차있어 간결하고 단호하다. 사람 사이의 목적 없는 친교나 우정은 무용하며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사치며 감상은 유치에 불과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거의가 무용하다. 사람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내용들도 거의가 무용하다. 그러나 예술이 부재하고 감상이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단체나 나라는 궁극적으로 무용하게 된다.

11월은 이제 어떤 이들에게는 멋진 인생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달로, 또 어떤 다른 이들에게는 삶의 향기가 짙어지는 날로 채워져 가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고정 컬럼란에 초대해 주신 시카고 중앙일보의 부단한 전진과 발전을 기원하며, 누구에게는 유치하게 보일지 모르나 내게는 살아가는 의미를 더하는 그리움을 담은 졸시 “편지” 를 띄우며, 2018년의 11월이 중앙일보 독자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감상의 달이 되기를 기원한다.

편지(최선주)

나는 그런 꿈을 꾸어요
첫 가을 햇살에 비치어든 노란 은행잎을 볼 때처럼
내가 차마 당신에게 작은 떨림이라도 될까 하는
당신의 피곤한 눈에 아 ~ 하는 설레임으로
별빛 담은 눈이 되는 순간이나마 있게 하는

하늘이 눈부시고
아침 햇살 흥건해 오는 시간이면
하루 내 견뎌내야 할 그리움이 버거워지는
슬픔 때문에
그것은 꿈이었음을 알아요

내겐 아직 이런 바램 하나 남아 있어요
내가 행여 그대에게 설풋이라도 떠오르면
바람피해 잠시 멈춘 양지녘 처마 밑에서 처럼
그대의 쓸쓸한 가슴에 잠시라도
온기로 찿아드는 작은 평화로 떠오르기를

차라리 여위어가며 시간과 경주하고 있을 그대를
전해오는 바람속에 설핏 느끼며
그대의 상처속에 내가 있지나 않은지
내바람은 어디쯤에서 멈추어 선 채
그대에게 가 닿지는 않는지 하는
아픔이예요.

<알림>
시카고 중앙일보 새 필진 최선주 목사의 칼럼 ‘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가 오늘(3일)부터 매주 토요일 게재(4면)됩니다.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게렛신학교 목회학 석사, 시카고 신학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선주 목사는 현재 종료나무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면서 게렛신학대학원 라이프코치, 임상심리치료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en of Style, Women with Love Self-help book in Korean’(멋있는 남자, 사랑 많은 여자•2007년) 등 다수의 저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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