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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타조의 꿈

나는 매일 옆집 할머니 엉덩이를 보고 산다. 아침 저녁 출근길 땅으로 머리 박고 하늘로 향한 연약한 엉덩이를 본다.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 지 노인은 온종일 잔디 풀 뽑고 크고 작은 꽃나무 손질하느라 무당벌레처럼 마당에 붙어산다. 그렇다고 할머니 앞뜰이 이웃집 마당보다 아름답지도 않다. 앞마당 반을 잔디 대신 붉은색 잔돌을 깔아 젊잖은(?) 백인들이 도시 미관규정 위반이라고 고발 하기까지 이르렀다. 할머니는 7년 전 네덜란드에서 이민 왔다.

이사 오자마자 한 겨울에 개스 대신 물 용광로 설치 하느라 마당을 파 재껴 이웃들의 눈총을 받았다. 환경 애호가인지 태양광 설치 하느라 우리집 쪽 나무를 무단으로 자르고 지붕 반만한 철판 깔아 나를 돌게 했다. 우리집 숲속 두더지가 자기 꽃밭 망친다고 우겨 덫을 사주기에 이르렀으니 이웃사촌은 물 건너간 샘.

‘일흔 넘은 나이에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아픔처럼/ 손바닥에는 못이 박혀 있고/ 세월의 바람에 시달리느라고 그랬는지/ 얼굴에는 이랑처럼 골이 깊구나./ 봄, 여름, 가을 없이 평생을 한시도/ 일손을 놓고는 살 수 없었던 사람/ 이 사람을 나는 좋아했다./ 자식 낳고 자식 키우고 이 날 이때까지

세상에 근심 걱정 많기도 했던 사람/ 이 사람을 나는 사랑했다./ 나의 피이고 나의 살이고 나의 뼈였던 사람-김남주 시 ‘어머니’



속을 파보면 곪지 않은 사람 있을까. 알고 보면 모든 게 양해가 된다. 말문을 트면 남의 아픔이 보이고 타인의 뼈마디 아픈 소리가 들린다.

타조는 날기를 포기한 새다. 지상에서 살기가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 날기를 포기한 새는 서툴러도 지상에서 사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할머니는 70평생을 살던 풍차가 그림 같은 고향을 등지고 하나 뿐인 딸이 사는 미국으로 이사 왔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알에서 태어나 시속 110km로 가장 빨리는 동물인 치타를 앞지르는 타조는 지상에서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날개를 포기한다. 타조는 위기에 처하거나 싸우다가 불리하면 머리를 모래 속에 집어넣는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비웃지 말라. 머리를 땅에 묻고 있어도 타조는 모래 속으로 전해져 오는 소리로 상대방의 방향과 힘의 크기, 공격의 의도를 파악한다.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빼내고 즉각 적의 반대 쪽으로 내빼는 지혜와 능력을 보인다. 할머니는 태어나자마자 다발증 경화증으로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산다. 깊은 숨을 쉴 때마다 할머니는 죽은 자식의 숨소리를 듣는다. 살기 위해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 타조처럼 땅에 머리 박고 산다.

내가 손을 흔들지 않아도 출근 할 때 할머니는 머리는 땅에 둔 채로 손을 흔든다. 할머니 남편이 치매로 지난 몇년간 투병했다는 사실로 요새 알았다. 요즘 자주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는 남편 돌보느라 외출을 못한다. 내가 힘들면 남의 고통이 보인다. 화랑 이사 끝나면 식사 시켜 같이 먹자니 주름이 환해졌다. 어머니도 이웃 할머니도 타조의 꿈을 꾸며 만리타향에 날개를 접었다.

타조의 날개는 비바람과 맹수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지붕이고 긴 목을 숨겨주는 피난처다. 타조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날개를 버리고 땅에 뭍은, 내려다 볼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삶을 꿋꿋이 견딘다. 하늘이 아닌 땅에서의 삶이 모질고 힘들어도 타조는 퍼덕이는 날개의 꿈을 접지 않는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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