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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정리의 대상

요즘 인터넷에는 책읽어 주는 사람들이 올린 오디오 북이 넘쳐난다. 덕분에 고전부터 신간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쉽게 맛볼 수 있다. 걸으며 집안일을 하며 또는 약속시간의 틈새에서 휴대폰만 있으면 쉽게 찿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북으로 가능해진 책읽기는 새로 얻은 친구처럼 흥미롭고 귀하다. 다양한 서적 가운데서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을 끄는 주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리하고 버리고 단순화 시키기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살아가면서 늘어가는 살림살이며 옷가지를 없애는 것은 마음을 크게 먹고 결정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집기며 가구 그밖의 온갖 소모품들은 집을 줄이거나 멀리 이사를 하는 경우에는 저절로 간소화 되기도 한다. 물품을 두고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정하는 것은 다소 번거롭긴 해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인생살이에서 주변정리를 할 때 가장 어렵고도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은 역시 관계상의 정리일 것이다. 살면서 거리상의 이유나 이해타산에 따라 저절로 멀어지고 뇌리에서조차 사라지는 인간관계는 무수히 많다.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일상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인연 또한 돌아보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가족 그리고 멀거나 가까운 친척, 또는 법적으로 엮여진 사람들과의 경우다. 살면서 해악을 끼치는 관계는 옳다 그르다의 범주를 넘어 극히 사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포함하기에 쉽게 판단되어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수십년을 평탄하게 지낸 관계가 어느날 갑자기 사납고 다툼이 있는 관계로 급변하고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는 성격 차이나 갑작스런 이해관계의 문제라기보다는 영적인 변화의 차이를 의심할만하다. 그런가 하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하는 사이에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고 아껴주는 정 깊은 관계가 되기보다는 속이고 질시하고 흠집을 내고 힘겨루기로 생채기를 내며 이어지는 관계라면 일정한 거리두기 내지는 정리가 필요한 관계다. 남들의 이목이나 판단을 염두에 두고 불행한 관계를 무던한 관계인 냥 연기하며 사는 삶은 관객 없는 무대에 올려진 연극 같은 삶이다. 살면서 진지하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점검하며 사는 일은 신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받게 되는 도전이자 피해서는 안 되는 당면과제다.

자신에게 조차 정직하고 진지하지 못하면서 타인과는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세련된 기만의 전형이다. 3년안에 양친의 별세를 경험하면서 가깝게는 형제자매간으로부터 친지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가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부모를 해하던 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아끼고 사랑한 것들을 냉대하고 무시하는 이들, 사소롭게나마 그들의 인생을 폄하하는 이들, 그들의 병환기간이나 별세소식에도 무덤덤하고 무정한 이들과 더불어 그저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지듯 어우러질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런들 저런들 여전하게 지낼 수도 있겠고 그리함이 무난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구차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엔 인생이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마음만을 나누면서 살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 “해저물어가는 시각”(졸시의 제목)에 가까웁기 때문이다: “해저물어갈 무렵이면/ 서쪽 하늘문이 열리고/ 황토빛 돛대 한자락 펄럭임따라/ 세상의 모든 낯설음이 맴돈다// 세상에 나와 보낸 수십년 세월에/ 웬만큼은 혼자서도 찿아갈 길 있으련만/ 엄마가 없는 이세상은/ 세상의 모든 낯설음으로 채워진다// 낯선집에 맡겨진 해저무는 저녁/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날처럼/ 노을가린 채 반쯤열린 사립문너머/ 유년의 그 눈물도는 세상이 돌아와있다.” 그대가 누구여든 차마 내게 지인이라 못하리라. 삭혀짐없는 깊은 상실의 아픔을 외면한 채라면.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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