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깊이 숨쉬는 것이어서
이른 새벽입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정갈한 새벽입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구릅니다. 여름이 지나는가 싶었는데 벌써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나무마다 옷을 갈아입고 내면의 호흡을 모아 진홍의 설레임으로 홍조를 띱니다. 부딪혀 오는 가을. 내 마음의 크기만큼 담겨지는 가을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하늘이 붉게 타는 언덕을 내려다 보며 오라 손짓합니다. 혼미한 나를 깨워 내 앞에 나를 세우듯 가을 풍경은 왠지 외롭고 쓸쓸합니다.
나의 풍경은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알 것 같은 그 마음이 내 안에 담겨져, 아무 말 없이도 오래 걸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별빛처럼 오랜 기다림의 이야기들이 스스로 숙성해져 서로의 깊은 마음이 낯설지 않는 그런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방울의 피, 한 점의 살도 섞이지 않아도 내가 너 이고, 네가 나이듯 서로에게 그런 절절한 풍경이고 싶습니다. 같은 시선으로 같은 곳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그리움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이제 그 그리움으로, 가을 숲으로 떠나 갑니다. 찬란한 가을 빛 속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을의 빗장을 열고 그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갑니다. 마침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숨 쉬며 살아감이 편안해져 그져 일상의 풍경으로 다가 올 때까지.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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