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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깊이 숨쉬는 것이어서

그리움은 딱히 누구를 향한 것 만은 아니어서 / 잊을 수 없는 고향 같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것이어서 / 멀리 떠났다가도 밀려드는 파도처럼 아프게 가슴을 쓸고 가는 것이어서 /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다시 살아나는 울림 같아서 / 그래서 다시 가슴 가득 팽팽히 채워져 터져 버리는 아픔 같은 것이어서 / 신열 후 찿아오는 섬찟 떼어놀 수 없는 나의 분신 같은 것이어서 / 뼈와 살의 부딛치는 소리 같이 내 안으로 새벽을 읽어내는 것이어서 / 신음도 낼 수 없는 깊은 어둠 같아서 / 빛을 잃은 별들이 모여 부르는 노래같이 쓸쓸함이 담겨 내려 오는 것이어서 / 당신으로부터 내게로 와서 처절하게 부서지는 것이어서 / 다시 네게로 향하는 아물지 않은 상처 같은 것이어서 /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맛 같이 달콤한 것이어서 / 어디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할지 거리의 미아가 되어 버리는 것이어서 / 그리하여 그 그리움은 혼미한 나를 깨워 내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이어서 / 벗겨진 나를 내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어서 / 멈춘 세상의 문을 열고 한없이 걸어 들어가 만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이어서 / 마침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어서

이른 새벽입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정갈한 새벽입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구릅니다. 여름이 지나는가 싶었는데 벌써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나무마다 옷을 갈아입고 내면의 호흡을 모아 진홍의 설레임으로 홍조를 띱니다. 부딪혀 오는 가을. 내 마음의 크기만큼 담겨지는 가을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하늘이 붉게 타는 언덕을 내려다 보며 오라 손짓합니다. 혼미한 나를 깨워 내 앞에 나를 세우듯 가을 풍경은 왠지 외롭고 쓸쓸합니다.

나의 풍경은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알 것 같은 그 마음이 내 안에 담겨져, 아무 말 없이도 오래 걸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별빛처럼 오랜 기다림의 이야기들이 스스로 숙성해져 서로의 깊은 마음이 낯설지 않는 그런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방울의 피, 한 점의 살도 섞이지 않아도 내가 너 이고, 네가 나이듯 서로에게 그런 절절한 풍경이고 싶습니다. 같은 시선으로 같은 곳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그리움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이제 그 그리움으로, 가을 숲으로 떠나 갑니다. 찬란한 가을 빛 속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을의 빗장을 열고 그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갑니다. 마침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숨 쉬며 살아감이 편안해져 그져 일상의 풍경으로 다가 올 때까지.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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