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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죽음을 넘는 삶의 노래로

선생님, 사는 게 다 그런 건가요. 세월이 왜 이리 빨리 가나요. 높은 산도 비바람에 깎이고 낭떠러지 절벽도 구름으로 채워지는데 인생의 날들은 갈수록 빈 자리만 남습니다. 추스리고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일주일이 후딱 지나갑니다. 한달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어제 일 같고 어제 한 일이 까마득한 옛날같이 어지럽습니다. 사는 게 별 게 아니라지만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관습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엄살 부리지 않고 습관처럼 먹고 자는 그런 삶이 아니라 누구도 흉내내지 않는 나만의 인생을 채색하고 싶었습니다.

이른 아침 앞뜰에 나가니 코스모스가 핑크빛 꽃잎 접고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어제까지도 차가운 가을 바람에 가는 목 흔들며 어렵사리 견뎌냈는데 더 이상 버티지 못했군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종국에는 떠나고 마는군요. 영원히 함께 한다는 사랑의 약속은 빈 말이였나요. 그러나 눈물 떨구지 않겠습니다. 코스모스 꽃잎이 떨어진 그 자리에 별처럼 갈래가 여럿인 가늘고 작은 꽃씨가 맺혔습니다. 사랑은 약속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기다림의 목을 돋우고 생명의 싹을 틔웁니다.

“그림과 글을 둘 다 하면 둘 다 놓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문학과 미술에 양다리 걸치고 한가지에도 올바로 집중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가여운 것이겠지요. 선생님의 깊고 영혼을 쪼개는 학문에 비하면 저는 날나리에 불과합니다. 날나리는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입니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답을 찿으려고 발버둥치는 부질없는 노력은 세상과 타협하는 속물인 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선생님의 필사본 ‘바리공주’에는 버림 받았지만 운명을 이기고 만신의 섬김을 받는 공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상감마마와 중전부인이 금기를 어기고 서둘러 결혼해 연거푸 딸을 낳게 되는데 일곱번째로 태어난 공주는 버려져 비리공덕할미와 비리공덕할아비 손에 구조돼 ‘바리공주’라는 이름으로 자랍니다. 죽을병에 걸린 친부모의 목숨을 구할 약수가 필요한데 여섯 공주는 핑계대며 안 갔지만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하기 위해 저승 여행을 가게 되는데 지옥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공덕을 쌓은 끝에 양유수를 구해 부모를 살립니다. 서사무가인 ‘바리공주’는 죽음의 노래이자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노래입니다. 죽음을 부정하고 영원을 기원하는 살아있는 자들의 노래입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제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였나요. 눈에 콩깍지 뒤집어 쓰고 안 보이는 것들을 사랑했나요. 불꺼진 그대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나요. 질문은 많은데 여태 해답을 찿지 못합니다. 그리움은 가득한데 그대는 내 곁에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저녁이면 문을 반복해서 닫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꽃피는 시간이였습니다. 어둡게 드리워진 영혼의 낙인 벗어던지고 마음의 감옥에서 헤어날 생각을 합니다. 만남의 자유가 없는 일상이 긴 고통인지 이제 압니다. 산다는 것은 매일 조금씩 죽는 일이고 세월을 줄여 나가는 것이라 해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세월에 낡은 옷 던져버리고 언젠가는 돌아올 그대 사랑을 기다리겠습니다.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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