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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인문주의와 타자의식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지식인의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플라톤주의적 질문에 대해, 중세와 근대철학의 비교를 통해 ‘차이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근대성의 성찰에서 현대철학은 이성의 타락을 이야기하곤 한다. 서양의 과학 중심주의는 비판적 이성보다는 정합적 이성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려고 하면서, 근대 철학을 주체의 이성 중심 위에 세우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문제의식을 두면,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문명은 우리의 삶터를 위기에 빠트리고, 과학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일체의 중심이라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인간 세상과 인간성을 초토화시키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 알 수 있다.

중심주의는 정말 협소한 가치다. 중심주의는 그 중심이 부셔져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무슨 주의에 지배되어 있다. 특히 과학주의, 이성중심주의, 실증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에스라인을 보고 한 여자를 좋아했을 때, 그 중심인 에스라인이 사라지면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그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에스라인이 한 인간의 중심도 전부도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노숙자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그냥 더럽다고 없어져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보고 내린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인문주의는 이런 우월적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주류 중심주의의 오류를 해체하는 데서 출발한다. 들뢰즈가 위대한 이유는 이런 이성 중심의 가치체계를 전복하여, 새로운 욕망의 작동 시스템, 즉 형이상학적 체계를 세웠기 때문이다. 들뢰즈를 통해서 중심주의적 철학적 가치는 다 붕괴되어 버렸다.

서양의 이성 중심 사상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시작되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주체사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신 중심의 중세시대에는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은 우리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주체사상이 근대의 과학주의와 결합하면서, 자연은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아니고, 데카르트의 ‘이성’이야말로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이 우리의 사고체계를 지배하게 된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이성주의로부터 유럽중심주의를 본격적으로 정립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헤겔이다. 헤겔의 백색신화에 의하면, 동양은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미개한 영역으로 서양에 비해 열등하다는 이분법 하에서 서양에 대한 타자로 자리 잡게 된다.

근대성에 기반한 이러한 모더니즘적 이분법은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다른 것을 억압하여, 상대를 타자화하면서, 주체의 우월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감성보다 이성이, 여성보다 남성이, 흑인보다 백인이, 동양보다 서양이, 노예보다 주인이 우월하다는 차별의식은 이성중심주의에서 비롯한다. 보시다시피 이분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분법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게 한다. 그것은 편견의 대상을 고통에 빠뜨린다. 즉 이분법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억압과 탄압을 낳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는 권력의 지배체제, 즉 억압과 순종의 메카니즘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푸코는 68년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으려 시도된 프랑스 5월 혁명이 실패하는 데서 자본주의 체제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걸 깨닫고 이런 메카니즘을 파괴하는 새로운 생성적 욕망 이론을 세운다.



이 타자철학은 우리 문학인 특히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지식인이란 말과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할 때, 지식인이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주류의 입장에 서는 것은 세상을 바꿀 의지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지식인은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세상의 모순을 본 사람이다. 삶의 근거라는 게 모순되어 있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본 사람이다. 보고 나니까, 자기가 모순에 찬 현실에서 나쁜 쪽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비교적 지배계층에 속한다는 데 대해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지식인은 양면적 존재로서 분열증을 앓는다고 싸르트르는 말한다. 진실을 봤는데, 외면할 수는 없고, 외면하면 지식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지배자가 되어 약자를 부리고 착취하는 모순적인 세상에 자기가 악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러면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어디에 있을까? 싸르트르는 앙가쥬망뿐이라고 한다. 모순을 타파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지식인이 자기 분열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싸르트르의 세계관이고 지식인관이다. 지금까지 중심이었던 것을 해체해서 중심이 아니었던 것을 새롭게 봄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인식 즉 타자 인식은 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던 중심적 가치가 우리의 생태를, 삶을 위협할 수 있는 것임을 새롭게 자각하게 해준다. 이로 인해 우리는 평소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 평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심 해체의 인문학적 세계관은 의식의 영역을 넓혀주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측면에서 지식인의 분열증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안에서 안을 바라다보는 것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때 그 안에 있는 모습들을 더 객관적으로 정확히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알아내어야 하고 밝혀야 하는 것은 삶의 모순이다. 왜곡된 현실이다. 진실은 사라지는 숨소리, 어두운 그림자, 보이지 않은 흉터까지도 잘 살펴야 드러나는 것임을 명심하자.



프로필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수필가
대한민국 수필학 대한명인(제15-436호)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편찬위원장
국제PEN클럽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장
한국바다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대상 수상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외 14권
헌)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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