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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교수 종교칼럼: 이스라엘 여행


언제가 한 번 쯤은 해야 할 것 같았던 일을 드디어 했다. 그건 다름이 아닌 성지순례. 지난 7월 21일부터 31일까지 학생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다녀온 것이다.

1989년 이스라엘 방문을 포기한 적이 있다. 84년, 1년짜리 비자로 미국에 왔는데, 그 비자는 만기가 되어도 풀타임 학생신분을 유지하는 한 유효한 학생비자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도 새로운 비자를 받지 못하까봐 한국 방문을 보류하고 계속 공부를 했다. 89년, 유학생활 5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에 제3국에서 비자를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제3국에서 비자를 받으려고 하다가 본국으로 쫓겨가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학교에서 주관하는 성지순례였다. 이스라엘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내 상황과 의도를 설명했다. 영사가 사무적인 말투로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것는 자유이지만 텍사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대꾸했다. 그래서 겁을 먹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후 성지순례의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성지순례에 대한 막연한 염려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내외 정세가 늘 불안하지만, 안전문제에 대한 염려는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어도 핑계거리를 만들어 거절했었다.

그 염려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이스라엘에서도 경험할 것 같은 예감에서 온 것이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보수되거나 재건된 불국사, 석굴암, 석빙고, 천마총, 첨성대 등을 보면서 역사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포장된 진입로와 정돈된 주변환경과 즐비한 기념품 상점들을 보며 뭔가 속은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스라엘에서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성지순례에 참여하기가 두려웠다.



더군다나 성지순례가 신앙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해악이 될 것 같은 염려도 있었다. 가끔 영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성지라고 하는 곳들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보면 미신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보였다. 장소와 건물과 조각상과 돌덩이들을 숭배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너무 거리가 있어 보였다. 고고학이라는 미명하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흔들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목사와 교수로서 당연히 성지순례를 다녀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우들과 학생들을 자주 대하게 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졌다. 언젠가 한 번쯤은 갔다 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에 학생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될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이 성지순례와 캠프사역에 동참하고 학점을 받는 클래스가 있다. 아홉 명의 학생들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그 클래스를 맡아 학생들과 함께 다른 그룹과 연합해서 전체 26명이 이스라엘 여행길에 올랐다. 학생들은 일주일간 이스라엘에서 여러 유적지를 돌아보고, 일주일 간은 텔아비브에 가까이 있는 뱁티스트 빌리지에서 파터스 윌(Potter's Wheel) 청소년 캠프를 도왔다. 나는 여름학기 학점산출과 졸업식 참석을 위해서 며칠 일찍 돌아왔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여러 곳을 돌아다니던 중, 염려했던 것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있고 기우로 판명된 것도 있었다. 곳곳에서 미신적인 요소들과 상업주의와 추측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성경을 통해 배워온 것들이 현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한낱 "전설따라 삼천리"인 것을 엿볼 수도 있었다. 반면에 이 여행이 어떤 학생들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머리 속에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성경의 기록들이 눈 앞에서 실제화되고 구체화되기도 했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엔게디, 사해, 쿰란, 나사렛, 세포리, 므깃도, 갈릴리, 벧산, 실로 등 여러 곳들을 돌아봤지만, 특히 잊지 못할 경험은 세 가지였다. 먼저는 요단강에서 한 학생에게 침례를 준 것이다. 요한이 침례를 베풀었던 곳이라고 하는 그 곳에서 한 학생이 침례 받기를 원했다.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라 약간 당황 스럽긴했지만, 천주교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학생이 최근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고 침례 받을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하기에 거기서 침례를 주었다. 그 학생의 신앙이 날로 성숙해가기를 바란다.

다음은 팔복산에서 산상수훈을 암송한 것이다. 팔복산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 가버나움과 게네사렛 사이에 있는 곳인데, 그곳 어디에서인가 예수님이 마태복음 5-7장에 있는 말씀을 전하셨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산상수훈을 암송하는 것을 생각만해도 긴장이 되어 전날 밤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기도 했다. 진지한 청중 앞에서 암송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서 마음이 후련했다.

세번째는 나사렛에서 한 아랍 기독교인의 가정을 방문한 것이다. 그 가족은 조부모 대로부터 나사렛에서 살았는데, 19세기 중엽부터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면서, 차별대우 받는 이방인들이 되어버렸다. 그와 같은 아랍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 약 130,000명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곧 유대인들을 지지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아랍인들은 모두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잊혀진 사람들이 되었다. 아랍 기독교인의 가정을 방문해서 그 가족과 교제를 나누며 기독교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키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성지순례에는 긍정적인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이 함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이스라엘 여행이 개인적인 신앙성장에 큰 유익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 손해가 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땅과 사람들과 문화를 경험하고, 아랍 기독교인들을 향해 눈을 뜰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언젠가 한 번쯤을 갔다 와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던 중에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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