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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I got your back! 기죽지마!”

Brunch.co.kr/@joyloveslife

-사기저하-

"일은 일이다. 개인적 감정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 사람 사는데 죽고 사는 문제만 빼면 나머지 일들은 사실 아주 큰 일들이 아니다."

이런 말들이 위안이 되면서도 지금 당장은 이 말들이 진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잠도 대략 설치고 말았다. 그 누구도 나를 쫓아 오지 않지만 마치 쫓기는 것만 같다. 불안함이 침대 위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불면의 몇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다시 잠이 와 주었다. 잠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



사실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직업만 구하면, 그것도 철밥통이라 불리는 일만 가지면 만사형통일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이 '만사형통의 꿈을 이루었노라'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히히 낙낙대는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는 뭔가 진짜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인생의 팔 할은 착각으로 채워져 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무턱대고 미국으로 결혼 이민을 왔다. 또 현재 하는 일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일단 지원해 보자!하는 당당함과 착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긴. 모든 것을 다 미리 알았다면 내 패기는 절반 정도 깎였을 지도 모르겠다.


-사기권장: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

이처럼 직장 스트레스로 잠 못드는 밤도 있지만, 그래도 빛이 되는 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몇 명이다. 어떤 이들은 내게 요상 망측한 형태의 질문을 하면서, 내 심리를 파악하거나 자신의 모든 정보는 주지않은 채 내게서 내 정보만 빼 가려는 이도 있다. 그럴 때는 참, 어이도 없고, 뭐랄까, 아주 짧은 그 시간 안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탁, 날려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혹은 문득 세수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고 뒤늦은 나 혼자만의 발길질이 이어진다. '에이, 젠장. 그 인간!' 혹은 주변 사람들은 '내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아니, 도대체 왜?! 혹은 어떤 이는 자신의 남편이 하는 일은 무척이나 당당하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두 눈에 힘을 퐉퐉 줘서 말하길래 괜히 부럽지도 않은데 내 입에선 '아, 부럽네요.' 라고 이상한 맞장구까지 치게 만들었다. 이것이 사회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기 싸움을 하는 모양인 걸까? 나는 이렇게 이렇게 잘난 사람이다. 혹은 내 식구들은 이렇게 이렇게 잘난 인간들이야! 어때? 부럽지 부럽지?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참으로 유치한데, 유치원이나 어른들의 직장 사회나 어떨 때는 크게 다를 바가 없나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선함이 느껴져서 그냥 두 손을 마구 맞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진정으로 당신에게 큰 문제가 없기를 바랍니다. 일에서의 스트레스가 적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도 당신 같은 때가 있었지요.' 와 같은 말을 그 사람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또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한 가지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그는 내게 큰 목소리로 "아휴, 이런 일을 혼자서 계속하면 힘듭니다! 내 보스가 뭐라고 하기 전까지는 내가 할 테니, 당신은 바로 여기에 서서 좀 쉬시오! 너무 많이 일한 당신! 여기에서 쉬시라!" 아, 어디에서 이런 금빛 긴 수염을 단 천사가 나타났을까. 그러한 말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듬뿍 들었다. 사실은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이 사람에게는 참으로 강한 정의로운 마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나를 본 지 몇 번이나 되었다고, 나라는 사람에게 이 같은 호의를 베풀어줄까. 그들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I got your back!" 너 뒤에 내가 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지지하고 있어! 그러니 기죽지 마!

내게도 꿈이 있다면, 몇년 후 (아, 제발 그러한 날이 오기를!) 신참이 들어왔을 때, 신참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다면 똑같이 I got your back! 이렇게 말해주면서 그 혹은 그녀의 사기를 돋구어 주리라.

-그래도 다 지나가리라-

어쩌다 보니 미국이민을 왔고, 또 어쩌다 보니 공무원의 세계로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것은 내가 찾고 바라던 "안정된" 공무원의 세계 라는 환상은 장막 뒤로 사라졌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진지하다. 한마디로 '군기'가 빡! 든 것 같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큰오빠는 이런 내게 한마디했다. "아이고, 동생아~ 그래, 미국 가서 음청 고생한다! 근데 말이다, 니가 이런 일을 할 줄을 누가 알았긋노? 너거 대학교 때 친구들이 알므는 음청 놀랄 일이대이! 니가 요로코롬 180도 다른 인생을 살다니 말이대이!) 그러나 나는 이 군기를 최소 일년 동안은 빼지 않기로 작정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첫 일 년은 시험기간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매의 눈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사를 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혹은 내게 중요한 것은 '두꺼운 얼굴'이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뻔뻔할 줄 알아야 하고,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상황에 휘둘리고, 내게 말 거는 사람들에게 휘둘려 문제가 발생하면 뒷감당은 오로지 내 몫이다. 그때는 함께 하하호호대던 친구 같은 동료도 없다. 모두 내 탓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 밥그릇을 내가 스스로 챙기려면 뻔뻔해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하고, 상사를 호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진정으로 두꺼운 얼굴의 대표 샘플과 같은 사람이다. 남들이 뭐라하건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에 있는 것이며, 그것이 일의 핵심이라면, 나는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직장에서의 내 두꺼운 얼굴을 가져야겠다. 그것은 내게 때로는 마스크가 되어 내 자신을 보호해 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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