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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Out of sight, out of mind”

지난달, 고희 기념 자전 에세이 출간을 기해 한국에 다녀왔다. 학연, 지연 등으로 인연을 맺고 지내온 지인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출판기념회’ 하면 그동안 쌓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저자가 정치인인 경우 정치자금을 모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책 팔아 돈을 벌 만큼 유명인도 아니고 그저 이날까지 살면서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지 팔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환담을 하며 음식을 나누었다. 책값을 받았다면 식비에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우리 가족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고국을 떠나 산 세월이 길고, 이역만리에 떨어져 사는 데도 시간을 내서 기꺼이 참석해준 지인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물질보다 따뜻한 마음을 받은 것이 더 행복했다.

어느덧 미국에서 산 지 15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격려해준 가족과 지인들 덕분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이끌어주려 노력했던 사람이라 옛정을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하면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게 아닐까 싶다. 소중한 지인들이 고맙다.

휴스턴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지난 15년간 에너지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는 물론 성당 교우들과 크리스천 친구로서 친교를 맺고 타향살이 외로움을 달래 가며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인으로 살려고 애를 썼다. 함께 한 시간은 한국의 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을지 모르지만,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말을 공감할 만큼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성당 교우들과 휴스턴 지인들에게도 그동안의 특별했던 인연들을 담아 사인한 자서전을 개인적으로 만나 전달했다.



글쓰기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께서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셨지만,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서전을 쓴 것이 아니기에 출판기념회라는 형식보다는 조용히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텍사스중앙일보에 실린 문학 칼럼을 보면서 고향의 향수를 달래던 성당의 어르신들께서 내게 해 주신 과분한 덕담 덕분에 한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앞으로도 평범하지만, 두루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갚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 갔을 때 처음 달려간 곳이 강남역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직원에게 내 책이 꽂혀 있는 곳을 물어 확인한 후 내가 이 책의 저자라고 자랑하면서 인증샷을 여러 번 찍었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사람의 책이 대한민국 최고의 서점인 교보문고에 걸렸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 지인들과 모임은 배너도 걸지 않고 작가 사인회 형식을 빌려서 소그룹으로 나누어 오붓한 분위기에서 정담을 나눴다. 나는 보통 사람이지만 가스공사 근무를 주축으로 여러 분야에서 각기 다른 인연들과 교분을 쌓았기에 한 장소에 같이 모여 형식적인 만남 만을 갖는다면 정담을 나눌 기회를 잃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에 LNG 산업의 초석을 놓기 위해서 정열을 불태웠던 가스공사 사우회 선후배들과 만남이 있었다. 작년에 팔순을 넘기신 나의 영원한 멘토께서는 한 걸음에 달려오시고 미리 말씀을 안 드렸는데도 깜짝 축복의 기도도 해주셨다. 아직도 정정하시니 반갑고 안심이다. 1960년대 후반 모든 것이 어렵고 부족하던 시절에 서로 의지하며 꿈을 잃지 않고 학구열을 불태웠던 까까머리 동문이 어느덧 고희의 나이에 오랜만에 뭉쳤는데 은사님도 두 분이나 참석하셨다. 현역에 있는 후배들이 대구 본사에서 달려왔고, 통영기지에 근무하는 후배는 휴가를 내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선배님이 그냥 가면 안 된다고 환송회를 해주러 대전에서 한번 더 올라왔다. 무익한 선배를 이렇게 환대해 주니 그저 고마웠다. 어렵게 주경야독 하던 만학도 들도 우정을 잊지 않고 뭉쳤던 만남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나는 많은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며 오랜만에 재충전을 하고 삶의 활력도 되찾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우리나라 속담과 같은 의미다. 사람이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멀어지게 되는 관계를 잘 묘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한국에서 함께 했던 지인들과 간격이 생긴다. 아무래도 옛날처럼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서운함이 쌓여 멀어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지 한국에 다녀온 후 멀어져 간 지인에게서 느꼈던 서운함이 앙금처럼 남는다. ‘너도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은공을 알게 된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난다. 큰 교훈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똑같은 상실감으로 나에게 서운했을 선배와 후배들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늦었지만 모든 것이 다 내 부덕의 소치이니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 여생은 지인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인연들과 좀 더 가까이하는 도반으로 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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