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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기증

경기도 과천시 추사(秋史)박물관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4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가 쓴 서신 23점이 소장되어있다. 이 편지는 조선 말기 금석학(金石學) 대가인 김정희가 조카와 친구들과 주고받은 서신이다.

흥미롭게도 이 편지들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후지쓰카 아키나오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후지쓰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동양철학자인 경성제국대 초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의 아들이다. 그는 청나라 학문을 연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유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 학문에 조선의 선비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었다. 후지쓰카는 당시 청나라 학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추사 김정희를 알게 되고 그의 학문과 천재성에 푹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후지쓰카는 인사동 거리 곳곳을 누비며 추사의 흔적이 담긴 문서와 서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중에 으뜸은 제주도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국보 180호)였다. 나중에 후지쓰카는 친한 사이였던 서예가 손재형이 90일간 그를 찾아가 3000엔이라는 고액을 낼 테니 ‘세한도’를 자기한테 양도하라고 하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돈을 받고 내놓는다면 지하의 완당 선생이 나를 뭐로 치부하겠는가.” 말하면서 며칠 뒤 손재형을 불러 세한도를 건네줬다. 그는 죽기 직전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에게 ‘조선의 유물은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62년 뒤인 2006년 2월 아들 아키나오는 선친의 추사 관련 유품 2700여 점을 과천시 추사박물관에 아무 조건 없이 무상으로 기증한다. 후지쓰카 부자는 추사의 자료들을 상품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 부자가 실천한 양보의 미덕이 결국 추사를 우리 곁에 남아 있게 했다.

또 한 명의 아름다운 기증자가 있는데 초대 성심병원장 수정 박병래 선생이다.



박병래는 조선백자를 사랑했던 소장가이기 전에 어려운 사람에게 인술을 베푼 의사였다. 그가 조선백자에 빠지게 된 사연은 이렇다.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초년병 내과의사 시절 26살의 박병래에게 일본인 교수가 접시 하나를 보여주며 “박 군, 이게 무슨 물건인지 아나” 라고 물었다. 대답을 못 하고 얼버무리자 “조선인이 조선 접시를 몰라봐서 말이 되느냐”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 뒤로 조선백자에 관심을 두고 수집에 나서게 된다.

돈이 많지 않아 주로 소품을 모아서 ‘연적쟁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1973년 월급을 털어 평생 수집한, 보물 1058호로 지정된 ‘백자 난초무늬 조롱박 모양 병’을 포함해 조선백자 362점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한다.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만든 예술품을 혼자만 갖고 즐긴다는 일이 죄송하여 몇십 년 동안 도자기와 함께 지내던 마음을 이제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라고 소회를 말했다. 이 백자들은 그의 이름을 딴 박병래관에 전시되어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기증유물 도록을 만들고, 1974년 선생의 생일에 맞추어 전시회를 열기로 했는데 개막을 며칠 앞두고 아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문화재 수탈기였던 일제강점기 때 박병래 선생 같은 뜻있는 소장가들 덕분에 우리 문화재는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이 유물들을 보고 즐길 수 있게 됐다.

김태원/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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