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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87>중미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2

1811년 베네수엘라는 독립을 선포했으며 볼리바르는 독립군 총사령관인 후란시스코 데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 1750-1816) 장군 휘하 대령으로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1813년 8월 3년에 걸친 전투 끝에 볼리바르는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카라카스에 입성했다. 그는 '해방자' 칭호로부터 군총사령관 최고원수 공화국대통령 등 수많은 영예스러운 칭호로 불리웠으나 스스로 가장 좋아했던 칭호는 해방자였다. 그는 독재자가 돼 베네수엘라를 통치했으나 1815년 반격을 가해온 스페인 왕실군에 패해 자마이카로 피신했다. 그는 그곳에서 중남미에 대한 깊은 분석으로 중남미 역사와 사상사에 탁월한 책인 '자마이카의 편지'를 저술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대륙이 몇 개의 국가로 나뉘어질 것을 예견했으며 중남미의 통치 철학은 강력한 자유주의 국가 국가 간의 연합을 역설했다.

1817년 볼리바르는 저항군과 5000여 명에 이르는 영국 아일랜드의 지원병을 인솔하고 독립 투쟁을 시작 1819년 혁명정부 수립을 발표했으며 1821년 까라보보 전투에서 남아있던 스페인군으로부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베네수엘라의 독립을 달성했다.

곧이어 중미 해방 투쟁에 나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누에바 그라나다(Nueva Granada. 현 콜롬비아)를 해방시키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시 1822년 에콰도르를 해방시키고 콜롬비아공화국에 통합시킴으로써 북부지역은 볼리바르에 의해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합됐다.



뒤를 이어 페루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투를 계속하던 볼리바르는 1822년 아르헨띠나를 독립시키고 북진중인 남미 독립의 영웅 산 마르띤 장군을 페루에서 만나게 되었고 에콰도르의 과야낄(Guayaquil) 항에서 역사적인 두 영웅의 회담이 성사됐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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