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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걷기 예찬

사람들은 아기들이 처음 걷게 되었을 때를 그렇게도 기뻐한다. 엄마들은 은근히 옆집 아이와 누가 먼저 걷는지를 겨루고, 언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는 언제 처음 말을 했는가와 비슷하게, 아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시간을 앞으로 돌려 인생 후반으로 가보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질문, '당신은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요?'에 대한 가장 흔한 대답은 '내 발로 걸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다. 이 두 가지 예는 걷기가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을 규정하는 기본임을 보여준다.

요즘에야 누구나 건강관리를 기본으로 생각하며 비만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라 운동 한 두 가지는 하게 마련인데 그 중 인기 있는 종목은 단연 걷기이다. 나 역시 한 가지 운동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주저 없이 걷기가 되리라.

하지만, 걷기의 미덕이 건강 증진에 그친다면 서운해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의 '걷기 예찬'은 제목 그대로 걷기에 바쳐진 찬사이지만 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현대 인류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 그는 정체성의 핵심 요소인 '몸'을 통한 위기 극복을 모색하면서, 대안의 하나로 '걷기'를 제안한다. 여기서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몸을 통한 명상으로 격상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고,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걷기에 나서는 순간 우리는 가없이 넓은 도서관에 입실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음미할 수 있다며 걷기 사랑을 토로한다. 산책하면서 강의하고 토론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철학자며 작가들이 산책 중에 영감을 얻어왔는가! 인류의 역사는 걷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문명의 시발점을 인류의 직립보행으로 본다면 말이다.

편한 옷에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밖으로 나서보자. 동네마다 흔하게 있는 공원도 좋고, 집 뒷산도 좋겠다. 마른 잎이 밟히는 야산이라도 있다면, 인생에서 그보다 더한 축복도 흔치 않으리라. 산책 중에 혹시라도 마주할지 모를, 한자리에서 비바람을 이겨내며 몇 번의 사계절을 맞이한 나무들이 생명을 다한 이파리를 떨구는 장엄한 순간은, 나의 자잘한 인간사를, 그 부질없는 고뇌를 잠재워 주리라.



명상을 위해 반드시 힘들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치성하는 잡념과 씨름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걷기는 자연스럽게 명상에 이르게 하는 신비한 마력을 갖고 있다.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것은 소수 천재의 운명일지언정, 산책은 모두에게 허락된 즐거움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뭇잎 냄새가 다향처럼 피어오르고, 사각거리는 소리는 길지 않은 산책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줄 것이니, 혼자라도 외로울 일은 단연코 없을 일이다. 외롭기는커녕 한발 한발 옮기는 동안 걱정을 잊고, 시간을 잊고, 주위를 잊고, 마침내는 그토록 내려놓고자 했던 나마저 놓는 행운(?)마저 누리게 될 것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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