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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과 절벽이 만든 천혜의 절경

스페인 남부의 보석 '론다'
자연과 문명의 조화 경이로워

안달루시아 평원의 여름은 강렬하고도 광활했다. 문득 드넓은 평원을 황금빛으로 불태우는 해바라기밭에 눈이 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려도 달려도 황금빛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토록 달려보기를 안달했던 안달루시아 평원은 그렇게 감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안달루시아의 대지를 사이클 프로 선수 페페도 달리고 있었다. 세계 3대 사이클 레이스 중의 하나인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 참가한 그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해 팀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을 다스리며 달리는데, 그에게 또 하나의 동요가 다가온다. 경기는 그가 자라온 마을로 접어드는데, 그 날은 형의 결혼식이 있는 날로 전 애인 카르멘이 형수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사이클 경주를 매개로 좌절과 실패, 그리고 승리라는 주제를 잔잔하게 그린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얘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달렸던 안달루시아의 평원이 끝나자, 길은 한국의 국토에 버금가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 중에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절벽 마을 론다(Ronda)로 이어졌다. 론다는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70마일 떨어져 있는 도시로 론다 산맥에 자리한 해발 2600피트 고지대로 협곡과 절벽을 끼고 있다.

중세의 포석이 깔린 좁은 도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거리로 나섰다. 워낙 작은 마을이니 길 잃을 염려도 없겠다 싶어 마음도 느긋해진다. 조그만 로터리를 지나자 곧바로 '푸엔테 누에보'와 만났다. 깊이 400피트의 타호 협곡에 걸린 이 다리, 압도적인 그 풍경에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아찔한 절벽 위로 새하얀 집들이 마치 제비집처럼 얹혀있는 모양새다. 절벽과 협곡은 과달레빈강이 천연으로 빚은 천혜의 절경으로 여기다 인간의 문명이 더해지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시인 릴케는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 고 조각가 로댕에게 편지에서 말했다. 봐도 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신시가와 구시가를 잇는 이 아치형 다리는 1973년 착공해서 이후 42년에 걸쳐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끝에 완성됐다. 론다의 세 다리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다리래서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리 중앙의 아치 모양 위에 위치한 방은 감옥부터 바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1936년부터 39년까지 일어난 스페인 내전 기간 중 양 측의 감옥 및 고문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포로 중 몇몇은 창문에서 골짜기 바닥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이 방은 다리의 역사와 건축에 대한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낭만적인 이 다리에 가장 참혹한 역사가 함께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전쟁에 희생된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론다의 이 절벽 아래로 내던져졌다.

론다를 두고 '연인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 예찬했던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비롯해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론다에서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헤밍웨이는 말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화가 피카소와 함께 투우 경기를 즐겼고, 그의 마지막 생일도 론다에서 맞았다고 한다.

다리 중간에 서니, 절벽 끝으로 밀고 나온 전망대 너머로 안달루시아의 평원에 오후의 햇살이 가득하다. 어떤 구릉지대는 올리브 숲으로, 어떤 들판은 해바라기일성 싶은 황금빛이 일렁인다. 다리를 건넜다 돌아와 헤밍웨이가 론다에서 생활하는 동안 수없이 오고 갔을 헤밍웨이 산책로(Paseo de E.Hemingway)로 길을 잡았다. 헤밍웨이의 산책로는 누에보 다리에서 스페인 국영호텔 파라도르 전망대까지 이르는 작은 오솔길을 부르는 이름이다. 론다에서 가장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전망대는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투우장 근처에는 헤밍웨이 기념비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파라도르 호텔에서 조금만 걸으니 론다 투우장이 나타난다.

론다는 투우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784년에 건설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이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오랜 역사를 가진 투우장 가운데 한 곳으로 여겨진다. 투우장 앞에는 18세기 근대 투우의 창시자 프란치스코 로메로의 동상이 서 있다. 투우장 앞에는 18세기 최초의 투우사인 페드로 로메로의 저택이 있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투우장 내부에는 투우 박물관도 있다.

누에보 다리 건너 왼쪽 골목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무어왕의 집에서는 신비한 푸른색의 아줄레호 모자이크와 소박하고 정갈한 정원이 구경거리다. 다양한 건축양식이 섞여 있어서 언뜻 동양의 분위기도 풍기는 몬드라곤 궁전도 빠뜨릴 수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곳, 론다의 한나절이 계곡을 감도는 바람처럼 흘렀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대사가 문득 머리 속에 울린다.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널 사랑하다보니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다."


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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