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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1] 배신·약탈·살육으로 얼룩진 500년 원죄

<1>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과 맺은 수백 건 약속 중
오직 하나 지킨 약속은 '땅 뺏기'

인디언에 대한 만행의 과거사
2010년에야 정부가 공식 사과



한인 이민자는 두 개의 조국을 가진 사람이다. 마음엔 언제나 떠나 온 한국을 품고 있을 지라도 현실에선 미국도 보듬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이 땅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이민국이 발간한 '미국 시민권 시험 예상 문제집'에도 100개 중 29개가 역사 문제다. 거기에 정부 조직, 정치 제도 등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되는 문항까지 더하면 거의 반이 역사 관련 문제다. 미국 시민권 시험은 사실상 미국 역사 시험인 셈이다. 시민권 시험 문제집에 실린 역사 문항을 중심으로 이민자라면 최소한 알아야 할 미국 역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은 1607년 북미 대륙에서 처음 세워진 영국 이주민 정착지였다. 제임스타운설립 당시의 무용담은 미국의 탄생지 신화가 되어 모든 미국 역사책의 첫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디즈니 만화 영화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포카혼타스라는 11세 인디언 추장 딸이 존 스미스라는 백인 선장을 구출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때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포카혼타스는 17살 때 존 롤프라는 백인과 결혼해 영국으로 건너가 사회적 명사가 되었다. 훗날 레베카라는 세례명으로 개명했으며 천연두로 죽었다.)

당시 그 지역에 살던 포와탄(Powhatan) 인디언들은 제임스타운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었다. 옥수수와 고구마 재배법을 알려주었고 숲의 풍습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제임스타운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착민들은 원주민을 배신했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땅에 대한 소유 개념이 없던 원주민들은 땅을 소유해야겠다는 백인들의 이상한 관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모두가 나눠 써야 할 땅이었기에 농사법을 전수하고 식량을 나누어주며 그들의 정착을 도왔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맞은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눈 추수감사절의 감동스런 유래는 이때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이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624년 뉴욕으로 진출한 네델란드인들은 불과 24달러 상당의 금속 냄비와 낚시바늘, 유리구슬 등으로 인디언 추장을 꼬드겨 지금의 맨해튼을 차지했다. 신대륙에선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처음엔 원주민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지만 결국 배신과 약탈, 살육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1700년대 후반부터 100여년간 연방정부와 인디언 간에 371건이나 되는 조약이 맺어졌지만 제대로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 인디언 추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백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 땅을 먹었다."

살던 곳 떠나 눈물의 강제 이주

#. 인디언 말살 정책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사람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임 1829~1837)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테네시 민병대 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인디언 소탕 작전으로 유명해 '날카로운 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819년에는 플로리다의 세미놀족을 공격해 잿더미로 만들었다. 당시 스페인 영토였던 플로리다는 이후 미국 땅이 되었다. 잭슨은 미국 영토를 넓힌 영웅이 되었고 지금도 20달러 지폐 인물로 날마다 우리와 만나고 있다.

잭슨은 백인과 인디언은 같이 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자 그는 의회를 압박해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1831년부터 2년간 4000여명의 촉토족이 미시시피강 유역에서 아칸소 서부지역으로 강제 이주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치카소족, 크리크족에게도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총칼 앞에선 무력했다.

마지막 강제 이주는 조지아주를 근거지로 한 체로키족이었다. 훗날 멕시코 전쟁으로 국민적 영웅이 될 윈필드 스콧(1786~1866) 장군이 주역을 맡았다. 그는 1938년 10월부터 이듬 해 3월까지 테네시와 켄터키를 지나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을 건너 수천마일 떨어진 오클라호마로 체로키족을 몰고(?) 갔다. 그 과정에서 추위와 피로, 굶주림으로 4000여명이 죽어 나갔다. 역사는 그 행렬을 '눈물의 행렬(Trail of Tears)'으로 기록했다.

최후의 인디언 학살은 1890년에 일어났다. 다큐 작가 디 브라운(Dee Brown)이 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1970)'는 인디언 사회에서 구전되어 오던 그들의 몰락사를 생생히 기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이 책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주 크리크. 제7기병대가 이동 중인 원주민 라코타족을 한 곳에 모았다. 모두 350명이었다. 기병대는 이들을 무장 해제시키려 했다. 수색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다. 기병대의 기관총 네 정이 불을 뿜었다. 그 자리에서 153명이 숨졌다. 남은 인디언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다. 350명 가운데 거의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1890년 12월 29일, 크리스마스 나흘 뒤였다."

1924년에야 미국 시민 인정

#. 2010년 5월 20일은 미국 인디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캔자스 출신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워싱턴 의회묘지에서 인디언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과거 폭력 행위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했기 때문이다. 의회묘지엔 미국 정부에 저항했던 인디언 지도자 36명이 묻혀있다.

도대체 과거 어떤 일이 있었기에 연방 정부 차원에서까지 사과를 해야 했을까. 앞서 서술한 이야기는 그 답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더 생생한 답을 구하려면 미국 독립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92년 10월 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산살바도르 모래톱에 처음 닻을 내렸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상륙한 곳이 황금과 향료의 땅 인도라고 믿었고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Indian)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붉은 피부, 툭 튀어나온 광대뼈, 굵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들은 아시아로부터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와 3만 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원주민(Native American)이었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상륙은 미국 역사에선 신대륙 발견으로 미화됐지만 원주민들에겐 피로 얼룩진 수난의 시작이었다. 영웅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찬 미국의 서부 개척사가 인디언 입장에선 처절한 멸망사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모험과 용기, 인내를 의미했지만 인디언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긴 파괴와 탐욕의 저주였던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콜럼버스 도착이후 500년 동안 이리 쫓기고 저리 흩어지며 들판의 짐승처럼 피 흘리며 죽어갔다. 노예 해방과 함께 만민평등권을 부여한 1868년의 수정헌법 14조에서도 인디언은 제외됐다. 1883년 연방대법원은 인디언은 미국 땅에서 태어났어도 이방인이라고 판결했다. 콜럼버스 상륙 당시 1300만 명에 가까웠던 인디언 인구는 19세기 말 25만 명으로까지 줄었다. 미국 정부의 말살 정책 외에도 유럽인들이 들여온 전염병도 큰 원인이었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1851년 처음 만들어졌다. 말이 보호구역이지 인디언 격리 수용을 위한 강제 주거 제한 구역이었다. 지금은 전국 326곳에 인디언보호구역이 있다. 인디언 인구는 191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생률이 사망률을 앞지르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인디언이 미국 시민으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1924년부터였다.

논설실장

시민권 시험 문제 풀이

▶문:유럽인들이 오기 전에 미국에는 누가 살았나?(Who lived in America before the Europeans arrived?)

답: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이다. 줄여서 보통은 인디언(Indian)라고 부르며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 원주민(Indigenous people)으로도 부른다. 2017년 현재 아메리칸 인디언은 약 290만 명으로 전체 미국인구의 0.9%를 차지한다. 타인종 혼혈까지 합칠 경우 약 520만명으로 전체 미국 인구의 1.7%가 된다.



▶문: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하나만 말해보라(Name one American Indian tribe in the United States).

답:연방 정부로부터 공인 받은 인디언 부족은 2017년 현재 567개에 이른다. 그 중 인구 순으로 상위 10개 부족은 다음과 같다.

①체로키(Cherokee) ②나바호(Navajo) ③수(Sioux) ④치프와(Chippewa) ⑤촉토(Choctaw) ⑥ 푸에블로(Pueblo) ⑦아파치(Apache) ⑧이로퀴이(Iroquois) ⑨럼비(Lumbee) ⑩크리크(C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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