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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창조경제' 집착의 득실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3/03/14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3/03/13 19:07

정부조직 개편 표류로 국정 파행 장기화
지엽말단 사안에 매몰되면 큰 목표 놓쳐

한국 여야의 팽팽한 대립으로 정부조직 개편안이 표류하는 가운데 국정의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 위협 때문에 급한 대로 일부 장관을 먼저 임명해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를 열었지만 핵심 각료의 부재는 정부가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현실을 더욱 부각시켰을 뿐이다.

여야가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국정 파행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핵심 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관할권 문제다. 새누리당은 "SO업무를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현행대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미래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SO 관할권을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에 두면) 방송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정부 1개 과의 업무를 어느 부처가 맡느냐를 두고 두 당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두 당의 주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논점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새누리당은 SO 관할권을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반면, 민주당은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새누리당은 경제적 이유로 미래부에 두자는 것이고, 민주당은 정치적 이유로 안 된다는 식이다. 두 당이 같은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주파수로 일방적인 주장을 펴고 있으니 타협이나 절충은커녕 정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운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사태가 꼬인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의 융합에 기반한 ICT산업의 육성을 통해 국가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진흥기능의 미래부 이관이 경제적 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민주당이) 과거 생각의 틀에 갇혀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놓으면 안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민주당이 경제문제를 정치논쟁으로 변질시켰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제 정부조직 개편안이 표류하는 이유는 명확해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 논리로 말하고, 야당은 정치 논리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청와대와 여당이 경제 논리를 정치적 언어로 번역해 야당을 설득하든지, 아니면 야당의 정치 논리를 받아들여 정치적으로 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여야의 협상과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 당분간 두 가지 대안 가운데 어느 쪽도 성사될 가망은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경제 논리를 통한 설득이나 정치적 타협에 나설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이것(방송진흥기능)이 빠진 미래부는 껍데기만 남아 굳이 미래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방송진흥기능의 미래부 이관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과연 국정의 공백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박 대통령은 이를 정부조직 개편에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포인트라고 보는 것 같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 차별화해 내세운 간판 정책이 '창조경제'이고, 창조경제를 이루는 골간이 ICT산업 육성이므로, 창조경제의 주무부처인 미래부에서 당연히 ICT산업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구조는 일견 형식적으로 내적 정합성(整合性)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창조경제'라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포괄적이고도 유일한 국정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밝힌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의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창조경제'다.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이른바 '창조경제'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다. 즉 전체 국정과제와 정책목표의 틀에서 보면 창조경제는 비교적 하위 목표이고, ICT산업 육성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하위 과제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부조직 개편에서 관철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체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엽말단적인 사안을 가지고 국정운영 전체를 거는 것은 아무래도 과해 보인다. 자칫하면 순수하게 경제 논리에서 시작된 정부조직 개편 요구를 야당과의 정치적 힘겨루기에 쓴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를 특징 짓는 정책목표다. 그러나 모름지기 경제정책은 그저 경제정책일 뿐 거기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과거 DJ정부의 '대중경제'나 YS정부의 '신경제', 노무현 정부의 '참여경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창조경제'는 눈앞의 경제 현안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비한 중장기 성장전략에 가깝다. 정책의 시급성이나 우선순위로 보면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일반 국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민은 중장기 성장전략보다는 당면한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경기대책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김종수 한국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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