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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아버지, 내 아버지

눈물이 난다. 요즘 자주 눈물을 흘린다. 뻑하면 운다. 마음이 흐늘해진 걸까. 끈 떨어진 연처럼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설까. 좋은 일에도 울고 슬픈 일을 만나도 눈물이 고인다. 드디어 눈물샘이 폭발 한 건 아닌지. 참고 견디면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티 안내면 아무도 모른다고 엄마는 말했었다.

어릴 적에 나는 잘 엎어졌다. 비실비실 잘 아프기도 했지만 앞도 안 보고 멍청히 딴 생각하며 걷다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져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잽싸게 내 눈물 닦아주며 울보는 남들이 넘 본다며 남 앞에서 울지 말라고 타일렀다. 아프고 슬퍼도 눈물 안 보이고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청춘에 홀로 되신 소복의 엄마는 내 운명이고 나는 어머니의 목숨줄이였다.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랐다. 오누이는 비둘기처럼 어미가 살을 뜯어 물어다 주는 모이를 쪼아먹으며 엄마 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득한 추억 속 앨범에 꽂혀있는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존재한다. 알지 못하면 모질게 그리울 것도 없다. 사랑도 사랑 받고 사랑해 본 사람 몫이다. 어머니는 아비고 어미였다. 어미 곁에서 달고 곤한 잠을 자면서도 동상이몽(同床異夢) 나는 아버지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요즘 부쩍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출가해 알콩달콩 사는 걸 보며 비바람 홀로 맞으며 모진 생을 살다 간 어머니 생각을 한다. 내가 미술실기 대회에서 상 받거나 백일장에 장원 했을 때, 대학을 졸업 했을 때, 결혼식 날에도 "니 아부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꼬"라며 이모는 눈시울을 붉혔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눈물 안 보이고 모질게 버티셨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도 장애아인 리사를 낳았을 때도 당신 딸이 울까봐 눈물샘 닫고 가슴으로 통곡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내 눈물샘 저 멀리 안 보이는 곳에 나 대신 흐느끼며 울고 계셨으리라.



말이 씨가 된다. 고사리 같은 내 손 잡고 "세상이 달라졌다. 니 아부지 말대로 딸이라도 미국 유학까지 보내 훌륭한 사람 되게 키울 거다"라고 말씀하실 땐 어린 맘에도 유언을 든는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그 때 미국 갔다와서 한국땅에서 잘 살라고 하셨으면 이국 땅에 이민 보따리 풀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저 멀리 보이는 땅 끝까지가 니 아부지 땅이다. 근동 사는 사람들은 다 아부지 땅 일궈 산다. 아비 없다고 아무도 니를 깔보지 못한다"라며 혹여나 아비 없이 기죽어 살까봐 어머니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주술처럼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평생을 속으로만 우시던 내 어머니. 첫 손녀가 첫 걸음 떼는 동영상 보고 우서방은 웃고 나는 속으로 울고, 온갖 장난감에 파묻혀 딸과 사위 품에 안겨 행복해 하는 손녀 얼굴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엄마는 혼자 얼마나 외로왔을까. 자라는 내 모습을 혼자 지켜보며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을까. 학사모 쓴 내 사진 만지며 "니 아버지가 보셨으면…" 딱 한마디 하시던 생각이 난다.

'한 여자가/ 귀뚜라미처럼 울고 있다/ 한 때는/ 한 사내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엄마였던 여자가/ 귀뚜라미 되어/ 수화기 속에서/ 지난 세월을 문지르며/ 온몸으로 울고 있다/ 밤이슬처럼 식은/ 눈물 한 방울/ 발등에 내려앉는 밤/ 묵묵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있는/ 내가/ 참/ 모질다' -백승훈 시 '모질다' 중에서

아버지날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생각에 나는 운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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