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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세상 보기] 허물만 역사적? 미국이 또 속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성공적 회담' 역설하는데
'성공' 강조하느라 김정은 감싸고돌까 우려

불투명 '완전 비핵화', 잘 돼도 한국은 고통
'역사 敵' 따지는 불행사태나 없기를 바라야


역사(history)는 단순히 발생한 사실의 나열 내지 기록이 아니라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 곁들여진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에 '적(的)'을 붙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이 됩니다. 물론 여기의 '중요한'에는 긍정과 부정이 혼재해 있습니다. 악영향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이 역시 입장차가 분명해 일괄 재단이 쉽지 않으나)개인과 국가·민족, 나아가 인류사회 공영에 기여하는 순기능적인 쪽을 일컫는 것으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뜬금없는 역사 타령은 돌아가는 세상이 하 수상해서입니다. 민초들은 접어두고…역사의 주요 주체로 기록될 지도자들이 세상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끌고 가려는 역사의식이 있는지 의아스럽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들을 거울삼아, 새로운 과오는 피하면서 미래의 초석을 놓는 엄중함이 덜 느껴지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편치가 않습니다. 북핵 위기를 타개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대표적 사례일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지면 절약을 위해 이하 직함 생략) 간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보도한 국내외 언론들이 모두(冒頭)에 동원하는 단어는 '역사적'입니다. 역사적 사건(a historic event)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세계사적 사건이라고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역사적'이란 단어가 6·12만큼 어울리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모든 게 사상 초유니까요. 당사자 면면에다 논의 대상까지를 감안하면 '역사적'이란 표현마저 부족할 지경입니다. 특히 한국, 한국인에겐 그러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민족 위기 상황을 다룬, 한민족의 명운을 가르는 사태 전개니까요.

그러나 트럼프와 김의 12일 회담이 형식은 역사적이지만 실질까지 역사적인지는 의문입니다. '역사적'을 인류사회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로 한정지을 경우 말이죠. 김과 그 측근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에 도움이 될지 과연 의문입니다. 한국인과 한민족,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겉으론 멀쩡한 회담 결과에 아연해 하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또 김에게 속았다. 당했다'는 비명이 계속 들립니다.

트럼프와 김은 한반도 비핵화, 북한 체제 보장 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가 공동선언 발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들도 하나하나가 획기적인 것들입니다. 타이틀만 봐선 역사적이라고 평가할 만 합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종전(終戰)선언, 북미 관계 정상화(상호 대사 파견) 등과 이의 구체화를 위한 후속 회담 진행 등등 냉전 70년을 청산하는 메가톤급 합의니까요.

다시금 강조컨대 6·12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입니다. 그러나 특히 핍박받는 북한주민을 포함한 한국인들로선 마냥 감격에 겨워할 계제가 아닙니다. 난제가 첩첩한 탓입니다. 무엇보다 얻은 것이라곤 빈 껍데기 비핵화뿐이고, 알속은 다 내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약속대로 비핵화 프로세스를 따르면 따르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문제가 크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우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출혈과 희생이 따르니까요. 하기야 김이 완전 비핵화 절차를 밟는 게 그나마 나을 터이지만 말이지요.

트럼프는 회담 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단언하면서 CVID가 아닐 경우 응분의 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4.27 판문점 회담 때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로 대체됐습니다. 트럼프는 '알맹이가 없다' '아무 보장도 없이 내주기만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CVID에 준하는 내용이 선언문에 담겼다고 반박했습니다. 청와대도 '완전한 비핵화'에 CVID가 담겨 있다고 거들고 있는데 비등하는 비판의 배경은 단순한 어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0년 동안 유사한 합의를 두 차례나 파기한 전과 때문입니다. 받아 챙길 것은 다 챙긴 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팽개친 북한임에도 같은 우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국익(National Interest)이 정의(Justice)에 앞서는 국제사회라지만 물불 안 가리는 북한임을 트럼프가 망각했다는 지적입니다. 검증 가능한 핵폭탄의 원료 플로토늄(Pu)과 달리 우라늄의 경우는 상대의 설명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음에도 뛰어난 승부사라는 찬사에 자아도취 돼 속아 넘어갔다는 겁니다. 김정은이 순진하게 보유 핵과 장비를 몽땅 내줄 리가 결코 없음에도 말이지요. 어쩌면 아니라고 강조하는 트럼프 자신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추론까지 나오는 판입니다. 특검 등 자신의 어려운 입지와 중간 선거 승리 압박이 '성공적 회담'에 집착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고요.

사실 김이 도저히 받기 어려운 요구를 제시하고 그를 빌미로 6·12 합의를 파기한다 해도 미국으로선 별도리 없을 겁니다. 북한을 다시 때리겠다고 나선들 소용없으니까요. 중국·러시아와 맞닿은 지정학적 현실이 바뀔 리가 없으니 미국인들 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대부(代父) 중국은 동북아 각축에서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니까요. 1년 전 김이 트럼프의 '큰 핵단추' 경고에 개의치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쏴 올린 것은 한갓 객기가 아닙니다. 트럼프의 '김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다'는 설명을 다독이기로 봐야할지 오판으로 읽어야 할지 답답합니다.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의 대가로 건넬 당근 값을 한국과 일본 몫이라고 미리 쐐기를 박았습니다. 중국도 일부 부담할 것이라고 곁들였는데 아무래도 직접 당사자인 한국 부담이 가장 클 게 확실합니다. 10년 간 조(兆)단위 달러를 갖다 바치게 될 겁니다. 한국 GDP 20%쯤은 북한 지원용으로 떼어 놔야 한다는 얘기지요. 말이 지원이지 조공(朝貢) 모양새가 십상이고-.

또 다른 우려는 미국 내 대북 협상 반대론자들을 조롱했던 트럼프이기에 김을 더욱 감쌀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김의 비핵화 의지를 두둔하느라 한미 합동군사훈련 의미까지 '괴상하게' 변색시켰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보유가 자위를 위한 불가피한 노력으로 비치게끔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을 북한의 안녕과 자존을 위해 세계 최강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온 위대한 인물로 부각시켰습니다. 성조기와 인공기 앞에서 트럼프와 어깨를 나란히 한 김정은은 핵을 보유한 나라의 능력 있는 젊은 지도자로 우뚝 섰습니다. 한국의 상당수 젊은이와 좌파들에겐 한민족을 아우르는, 유머 감각 있는 지도자로 자리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임기가 무제한인 김정은과 대한민국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의문입니다. '북한에 거금이 들어가 주민 생활이 나아지고 의식이 깨어나면 김정은도 못 배겨날 것' '천문학적 대북 지원을 하더라도 개발에 참여하면 상당액을 뽑아내니 지레 겁먹을 게 없다'는 등 낭만적 설왕설래나 그득한 한국입니다. 회담을 언급할 때 북한을 앞으로 하는 북미(北美)가 '기본'입니다. 미국을 앞에 넣어 미북(美北)으로 호칭하면 눈총을 줍니다. 그 사연은 구구하니 이만 줄이죠. 조선일보 정도가 미북을 고수하는데 대표적 언론사 중앙.동아도 나름의 이유를 들어 북미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달라지겠지만 다 잃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미국이 젊은 수령이 지금의 학살 행태를 거듭해도 체제보장 약속을 이유로 외면할지 궁금합니다. 북한은 인권 조항에서 예외적 존재라고 할지…도대체 헷갈립니다. 인권이라면 거품을 물던 한국 내 좌파들은 다른 이의 문제 제기까지 가로막을지 모르고-.

미국이야 트럼프가 떠난 뒤 북한이 딴소릴 하면 그때 다시 궁리해도 된다지만 한국은 절대 절명 위기에 봉착할 겁니다. 그래선 절대 안 되겠지만 통한(統韓)은 고사하고 '역사 적(敵)'이나 따지는 통한(痛恨) 시대 도래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좌우간 혈맹의 최고지도자와 남북한 최고지도자가 벌려 놓은 일이니 백성들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가 속은 게 아니길 기원해야죠.

kim.hyunil@koreadaily.com


김현일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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