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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견디자! 친구야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9/07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18/09/06 15:45

'죽어도 못한다'는 말은 안 죽어봤다는 말이다. 당장 죽는다면 못할 일이 없다. 나는 운동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운동은 작심하고 여러 가지를 섭렵해 봤지만 삼일 버틴 적이 없다. 한 시간 하는 요가나 줌바클레스는 10분 후부터 벽시계를 보기 시작해 30분 지나면 주리를 튼다. 운동하는 게 죽기 보다 싫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살만하니까 부리는 수작이다. 하루 8시간 운동 안 하면 한 달 만에 죽는다고 경고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운동할 게 뻔하다. 세상에 죽는 것 빼고 당해서 못해낼 것은 없다. 아무리 힘든 일도 뼈를 삭히는 고통과 슬픔도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죽음은 헤어날 수 없는 어둠의 강을 오래도록 혼자 헤매일 것 같아서.

세월이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세월이 시간을 앗아가고 사람 사이를 갈라 놓는다.

나는 가족이나 사업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

중요한 내용이나 사업은 e메일로 교신한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이라도 일년 내내 소식 두절한 상태로 지내기 일수다. 다행히 이런 내 습성을 양해하고 이해해 주는 분들이 많아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연말연시엔 자주 연락 못한 그리움과 죄송함을 담은 고해성사 편지와 가족 사진이 알콩달콩 담긴 예쁜 카드를 보낸다.

무디어가고 아리송해지고 기억이 흐려지는 바쁜 일상을 멈추고 세월의 바퀴 돌려 한해 동안 그립던 얼굴들을 가슴에 새기며 보내는 카드는 얼마나 달콤한지.

언젠가 마지막 편지, 돌아오지 않는 종이학을 날려 보내는 날은 눈물이 나겠지만.

그제 섬뜩한 메시지를 받았다. 내 소시절 친구 Y에게 다음 주 한국 간다고 전화 했더니 목 치료 중이니 문자 남기라는 메시지가 왔다. Y는 고향 가면 꼭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일 이년에 한 번 정도 한국 방문 때만 스치는 듯 만나는데도 무던한 내 친구는 캐묻지 않고도 내 일상을 토닥거려 준다. 사업과 미술에 몰두 하지만 내가 얼마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왜 내가 잘 나가는 문단의 인사들 곁에 맴도는지 친구는 나보다 나를 잘 안다. 30년 가까이 수필 한 장 써보지도 않았던 내가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 몸살이 났을 때도, 주변에서 쓸데없다고 은근히 혹은 악착같이 말렸을 때도 친구는 조용히 내 등을 떠밀었다.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용기가 나질 않아 내 스스로 묻고 또 물었을 때 친구는 말했다. "너는 꼭 해 낼 수 있을 거야. 글 쓰는 건 네 운명이니까" 그리고 소설은 출간 됐다.

어제 본 친구 메시지가 찜찜해 묻기도 겁난다. '지금 어디?' '서울' '서울 어디?' '병원' '아프지 말어' '아픈 거는 맘대로 안 되네' '많이 아프니?' '일년 됐어' '어느 병원?' '재활병원' 서로 중요한 부분은 말하기 두려워 빠트리고 퍼즐 게임하듯 맴돈다 '뇌경색인데 인지하고 말할 수 있다'는 말에 맥이 탁 풀린다.

'얼마나 힘들었니? 상세한 건 안 물을께. 네게 해 줄 위로 조차 안 떠오르고 맘이 아프다.'라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말은 '밥 잘 챙겨먹고' 였다.

우리를 고통과 아픔에서 견디게 하는 것은 생에 대한 집념이다.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절실한 행동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게 한다. 견디지 못할 아픔은 없다. 버티지 못할 고통도 없다. 죽을 각오로 덤비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친구야, 내 사랑하는 친구야. 더 이상 아프지 말어. 죽지도 말어. 언제가 세월이 우리들의 흔적을 이 땅에서 지운다 해도, 그때까지 용케 버텨야 한다. 견디자! 친구야. 그리고 살아남자. 다시 만나서 찬란한 석양을 손잡고 마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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