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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삶의 지우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늘도 지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버 문화 이론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는 미국의 사회 평론가 더글라스 러시코프는 이런 말을 했다.

"이 땅의 많은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지우개다."

만일 지우개가 없었다면 미술가들은 데생이나 스케치가 불가능 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작곡도 힘들었을 테고, 학생들은 시험을 보고 틀린 걸 고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컴퓨터도 지우개 기능을 하는 'delete' 키가 없었다면 이 기계가 지금처럼 편리한 도구가 되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고 작은 실수,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로 매일을 수놓고 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들을 후회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지우고 싶지만 그것은 나의 마음이고 이미 상처를 받은 상대방으로부터의 용서는 바랄뿐이다.

아주 오래 전 나는 나의 은사님에게 실수의 발언을 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은사님을 너무 가깝게 느껴 허물없이 한 얘기였는데 듣는 분은 그렇게 듣지 않으셨다 보다. 무엇이 그리 섭섭하셨는지 지금까지도 못 마땅해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는 내 마음을 이해하시겠지 하고 참고 기다리지만 때로는 참 힘 드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 늙어간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또 다른 의미의 뉘앙스를 준다. 나이들이 80이 넘고 가까워져서 그런지 본의 아니게 말의 실수를 하면서도 그것 자체를 곧 잊는다는 사실이다. 서로 용서를 구하면 기억도 없는데 하며…

가까이 지내던 한 친지는 남편을 떠나 보내고 난 후 그 충격으로 많은 일 들을 잊고 산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늘 불안전한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어느 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숙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교회에서는 6주간의 여름철 성경공부가 있다. 성령강림과 더불어 시작된 교회의 역사는 지난 2000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 우리에게 이르고 있는데 이 교회사(敎會史)는 바로 '신앙의 역사' 임을 공부하면서 내 힘으로는 결코 지워낼 수 없는 죄와 허물을 깨끗이 지워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사소한 일상생활에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 '용서의 지우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용서의 지우개'를 들고 거동이 불편하신 큰 시누님을 만나보고 싶다. 우리는 뉴욕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전에는 잘 몰랐는데 요즈음 큰 시누님이 많이 보고 싶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매일의 일거일동은 헤아릴 수 없지만 삶의 지우개를 쥐였다 폈다 하며 인연 있어 만난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싶다. 작년에 스쳐 지나던 산호세의 아름답던 바람소리가 마냥 그립다.


정순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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