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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이모티콘으로 하면 됩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전 포트리고교 교사

2012년 봄, 스마트폰을 샀다. 나와 문자 하기 힘들다고, 빨리 스마트폰 사서 카카오톡 하자고, 주위에서 성화해도 버텼는데, 어느 날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먼 거리를 갔다가 바람을 맞았다. 교수가 갑자기 휴강 이메일을 보낸 것을, 수시로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없는 나만 몰랐다. 홧김에 스마트폰을 산 이후, 가장 애용하는 앱 중의 하나는 카카오톡이다. 카톡은 세계 어디서든 와이파이만 있으면 무료로 문자와 통화가 되고 쉽게 사진 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다.

또한 카톡의 재미 중 하나는 이모티콘이다. 다른 문자나 전화 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카톡에는 이모티콘이 풍성하다. 처음에 이모티콘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이제는 이모티콘의 찐팬이 되었다. 미안할 때, 무안할 때, 기분이 안 좋을 때나 좋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고마울 때, 위로해주고 싶을 때, 또는 위로받고 싶을 때, 힘내라고 하고 싶을 때, 평안한 밤을 빌어주고 싶을 때, 때로는 적절한 이모티콘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내 마음을 잘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모티콘은 가히 천상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상담 오시는 부모는 대부분 엄마다. 그러다 간혹 아버지들이 오시면 왠지 신이 난다. 엄마하고는 그나마 대화도 좀 하고 그러지만, 아빠하고는 대화가 더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아빠와 더 힘든 관계가 되거나 아니면 관계가 아예 없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사실은 아버지들의 상담이 많이 필요하다. 용기를 내서 찾아오신 이 아빠들이 나는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이 아빠들에게 얼마나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느냐고 묻는다. 표현해본 분이 거의 없다. 아니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위해 애쓰는지, 보면 알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오히려 되물으시는 이 천진하신 아빠들에게 나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사랑은 꼭 표현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어색해서 어떻게 하냐고 하시는 아빠들에게, 숙제를 드린다. 사랑을 표현하라는 숙제다. 말도 못 하겠으면 문자와 이모티콘을 쓰라고. 이번 주 딸에게, 아들에게,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이모티콘을 하루에 한 번씩 보내라고. 이모티콘을 한 번도 안 써본 이 아빠들에게 기본적으로 카톡에 깔린 이모티콘들을 알려주고 이모티콘을 통한 사랑 표현을 숙제로 내준다. 다음 주에 검사하겠다고 살짝 으름장까지 놓는다. 오랜 기간 교사였던 직업병이다.

두근두근, 다음 주에 기대를 가지고 만났다. 한 분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신다. 딸에게 사랑한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는데도 아이가 아무 반응이 없다고. 전화기를 열어 보니 개인 톡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족 채팅방으로 보냈다. 헐, 그러니 그 딸이 알게 무언가 말이다. 다른 한 분은 더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신다. 처음으로 아내에게 하트를 보냈는데, 아내가 더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잘못 눌러서 “깨진” 하트가 보내졌다고! 아내가 노발대발했을 것은 당연하다. 아, 남자들이란!

하지만 이것은 처음의 실수였을 뿐, 말로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전에 없이 이모티콘을 써서 계속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오는 아버지를, 남편을, 자녀와 아내는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그들 사이의 관계는 매우 부드럽게 되었다는 행복한 후기를 전해드린다. 요즘 사랑의 메신저는 큐피드가 아니라 이모티콘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로 하기 힘든 이 사랑 표현, 이모티콘으로 하면 된다. 말보다 더 찐한 사랑이 전해진다.

요즘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모티콘들이 많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한 제자의 취업을 위해 추천서를 써줬더니 고맙다고 “YOHA” 이모티콘 한 세트를 보내주었는데 얼마나 즐겨쓰는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기본이고, “콜” “엄지 척척” “최고” “감사함다” “요래요래 힘내봐봐” 이런 것들과, “아이고 골치야” “그 입 다물라” “체력이 예전같지 않네” “헐” “손가락 부러졌냐고” “눈물을 거두시게” “똑땅해” 등도 있다. 격하게 편들어주고 싶을 때는 “쥐패불까”가 아주 그만이다. 캐릭터의 웨이브가 전반적으로 좀 격해서 이 나이에 약간 민망하다 싶긴 해도, 감정을 유머 있게 표현하는 데는 그만이다.

얼마 전 뜬금없이 친지들에게 재밌는 이모티콘들을 보냈다. 내 카톡에서 상대방 카톡으로 간단하게 직접 보낼 수 있고, 가격은 ‘거금’ 3불 미만이니 부담 없이 많은 사람에게 쏘아줄 수 있다. 갑자기 내 이모티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우울하다가 그걸 열어보고 깔깔 웃으며 즐거워했다니, 요즘같이 웃을 일 없는 세상에 뭔가 좋은 일 하나 한 듯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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