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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선인장을 닮은

이수임 / 화가·맨해튼
이수임 / 화가·맨해튼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8/11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8/08/10 15:56

도시의 골목마다 솟아오른 건물에서 뿜어내는 매연에 찌들고, 도로 위를 끊임없이 질주하는 차들이 쏟아내는 소음에 시달린다. 특히나 앰블란스의 악을 쓰는 듯한 사이렌 소리에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다.

어릴 적 그 날도 한밤중이었다. 잠결에 뭔가가 가까이 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귀를 곤두세웠다. 누군가 대문을 통과해서 창문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불 속을 빠져나와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 죽여 창가로 다가갔다. 작고 마른 남자가 조심조심 현관으로 다가오고 있다. 왜 이 밤중에 까치발로 우리 집 문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좀도둑질하려고? '도둑이야~' 소리치려다 멈췄다. 자세히 보니 낯익은 동네 아저씨다.

바보 같은 모양새로 문 가까이 살살 다가오는 그를 불에 덴 듯 화들짝 골려주고 싶었다. 옆에 있는 다듬잇방망이를 집어 들어 온 힘을 다해 캐비닛 문을 두들겼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갑자기 찢어지듯 깨지는 소리에 질겁한 그는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만들어 냈던 가장 크고 괴기한 소리가 아니었을까?

그 후로도 대낮, 길에서 도둑 아저씨와 가끔 마주쳤다. 혹시라도 눈치챘을까 봐 나는 먼 산을 보는척하며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다가 빠른 몸짓으로 골목 안으로 숨어들었다. 훔칠 것을 찾는지 주위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는 뒷모습은 초라하고 작았다. 그래서였을 까? 아무에게도 그 아저씨가 손버릇 고약한 좀도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잠귀가 밝았다. 잠귀만 밝은 게 아니라 오감은 항상 긴장 상태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조금만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고 난리를 떨었다. 누가 쳐다만 봐도 쳐다본다고 난리, 누가 가까이 앉는 것도 눕는 것도 싫어했다. 오감을 오뚝 세우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온갖 트집을 잡으며 엄마를 힘들게 했다. 오죽하면 친정엄마는 나에게 신경 죽이는 한약을 먹이려고 했을까?

나이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나의 오감 난리를 받아 줄 사람이 없다. 남편은 글쎄? 아니다. 힘겨운 결혼생활로 오감이 소금에 절인 오지지나 파김치처럼 짓눌려 쭈그러져 곤두세우기가 힘들어졌다고나 할까? 병 안에 오이지를 꽉 누르고 있는 둥근 차돌 닮은 남편에 눌려 예민한 감각이 조금은 밋밋하게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아직은 나 자신을 오이지나 파김치보다는 선인장에 비유하고 싶다.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쓰고 빛을 향해 몸을 돌리며 창가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채 뭔가를 기다리는 선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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