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해인(海印)
가야산을 오르는데 바다가 따라오고 있었다출렁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물길에 발은 휘청 무거워졌지만
마주하고픈 법상이 문을 여는 듯한 예감
들뜨는 발걸음 잡아주고
해인사 일주문 이르는 길에는
천년의 시간이 새벽안개로 피어 올라
낮추어라 또 낮추어라
속삭인다
세 번 절하고 한 글자를 새겼다는
팔만대장경
오천 삼백여 만 글자
그 수많은 획마다에 깃든
하심(下心)의 무게
풍진세상 격랑 다 가라앉히고
맑은 바다에 도장 찍힌 듯
숨 막힌 고요
글자마다 내려 앉았다
그 가르침 알기도 전에
가슴으로 먼저 스며들었다
해인사 감싼 바닷물은
이제 물위에 어린 그림자를
아득히 펼치고 있었다
성정숙 / 시인·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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