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눈가리개
빛을 보면 부서지는 그녀어둠에 익숙해지자
망막은 점점 퇴화되어간다
그녀와 세상 사이의 위험을
그녀는 피부로부터 느낀다
그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
고개를 젓다가
눈물을 삼키다가
생의 옷을 한 겹씩 벗기 시작한다
빛이 들어오는 그 찰나에
얼굴은 일그러지고
몸은 뒤틀린다
차라리 내면에 어두운 성을 쌓고
발바닥에 뿌리를 내린다
가끔 그 성안을 도굴하며
내밀한 곳을 예리한 촉각으로 훔친다
생을 증거 하는 것은 비명뿐이었으나
그녀를 잊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우리 모두 어쩔 수 없어
절박한 오류만을 범하며
함께 부패해가고 있을 뿐이다
이번 생은 아프다 많이
그녀를 둘러싼 주위가
천천히 물들어간다
정명숙 / 시인·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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