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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제로 마을' 영국 웨일스의 친환경 실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1/29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8/01/28 17:42

2400명 주민이 시작한 캠페인

영국 웨일스 바닷가 마을인 아버포스의 한 주점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간) 저녁 주민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 웨일스 바닷가 마을인 아버포스의 한 주점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간) 저녁 주민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기차를 3시간 30분가량 탄 뒤 다시 차량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1시간 30분가량 달리자 웨일스 서쪽 바닷가 마을 아버포스(Aberporth)가 나타났다. 2400명가량이 사는 이 마을은 과거 어업이 활발한 항구였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해변을 찾는 여름철을 빼면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7시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 펍에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플라스틱 프리(free) 마을'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지난해 10월부터 벌이고 있는 이들이다. 캠페인에 동참하는 업체를 늘리는 등 확산 방안을 강구하려고 저녁 시간을 쪼개 머리를 맞댔다.

SNS로 아이디어 공유

회사 매니저로 일하는 모라그 에블린톤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최소 3종류 이상 줄이는 업체에는 친환경 스티커를 나눠주자"며 스티커 시안을 소개했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쓸 수 있는 나무 접시와 생분해되는 재질로 만든 일회용 포크와 나이프 등을 돌려 본 주민들은 "기존 제품보다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업체들이 이런 제품을 쓸 수 있게 하려면 단체 주문을 통해 비용을 낮춰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회의에 참석한 게틴 데이비스 주의회 의원은 "안전한 물을 마실 곳이 있다면 굳이 관광객이 일회용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을 사지 않을 것"이라며 "야외 급수대를 설치하기 위해 예산을 배정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업소들이 컵을 가져오면 수돗물을 제공한다는 안내문을 내걸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경험담을 소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클레어 영은 "아이 학교에서 우유 급식 여부를 조사하길래 일회용 용기에 담긴 제품 대신 우유를 큰 통에 담아 아이들이 컵에 따라 마신 뒤 씻도록 할 수 있느냐고 편지를 썼다"며 "교장 선생님이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우유 공급업체와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알리는 영상물을 제작해 학생들의 봄방학 기간에 맞춰 상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인근 지역의 환경보호 주민 모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알리기 위해 담당자도 정했다.

캠페인은 웨딩촬영 일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게일 투더(51.사진)가 처음 제안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그는 웨일스를 비롯한 영국 해안을 여행하다 바다에 떠 있거나 해변으로 떠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게일은 "매일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사는데 플라스틱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었다"며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미세한 조각 형태로 물고기 등에 섭취된 뒤 다시 우리 식탁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플라스틱 프리 아버포스'라는 제목을 달고 공감하는 주민들은 펍으로 모여달라는 글을 올렸다. 조마조마하며 펍을 찾은 날 그는 14명의 동지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을 내지 못했지만 다음 회의에는 오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우유는 유리병, 종이컵 안 써

시간이 흐르자 동참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마이크 앨런은 플라스틱병에 담긴 우유 제품만 팔아왔지만 먼 곳의 농장을 접촉해 유리병에 든 제품을 들여왔다. 주스도 유리병에 담긴 것을 추가했다. 종이 빨대와 대나무 칫솔 등도 비치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앨런은 "유리병 제품을 찾는 주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요즘은 빵 납품업체도 비닐 포장 대신에 종이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제조 업체를 설득해야 한다"며 "대형 음료 제조업체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변 카페를 운영하는 게틴 제임스는 플라스틱 코팅이 돼 있는 종이컵을 단가가 2배 비싸지만 쉽게 분해되는 재질의 컵으로 바꿨다. 여름철에는 대나무 컵을 구매해 사용하는 손님들에게는 무료 리필이나 할인 혜택을 줄 생각이다.

해변 펍들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쓰고 있고, 비닐봉지에 담긴 일회용 소스 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커피나 차와 함께 제공하던 일회용 우유도 도자기 그릇에 따라 내놓는 방식으로 바꿨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음료병만 하더라도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4800억 개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분당 100만 개가 팔리지만, 재활용을 위해 수거되는 비율은 50% 미만이다. 새 병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7%에 그친다.

상당수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로 버려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 등은 중국으로 폐플라스틱을 포함한 쓰레기를 대량 수출해왔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해 고체 폐기물 24종에 대한 수입을 전격 중단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소각장은 턱없이 부족하고, 소각장을 신설하자니 공해가 우려되는 데다 그냥 매립하기엔 양이 너무 많다. 영국 정부는 우선 플라스틱 사용 억제를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소비자 뭉치면 제조업체 변한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게일은 누구나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나 혼자 뭘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한 명'이 있고 그들이 모이면 큰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인 우리가 뭉치면 결국 수퍼마켓 같은 유통 매장과 제조업체, 나아가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며 "주변 공동체에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법을 어떻게 전파할지를 고민해보자"고 덧붙였다.

아버포스엔 일회용 플라스틱에 집착하는 주민과 업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플라스틱 폐기물 없는 세상을 향한 아버포스의 도전은 이제 막 깃발을 올렸다.

김성탁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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