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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지시 '알아서' 해석 선수…손타쿠 문화 때리다

일본 라이벌 경기 반칙에 들썩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도쿄 치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스무살의 미야가와 다이스케 선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이벌 대학과의 미식축구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에게 반칙 태클공격을 한 이 선수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부상을 입힌 상대팀 선수와 가족에게 "큰 피해와 폐를 끼친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라며 약 20초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작 반칙 태클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감독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대학 간 미식축구 경기에서 발생한 반칙 태클사건을 두고 일본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논란이 식기는커녕 문부과학성 장관까지 나서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는 거의 한 달째 매일 신문 1면과 사회면, 스포츠면을 장식하고 있고, TV는 관계자들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할 정도다. 단순한 태클 사건으로 보이는 이 사건에 많은 일본인들이 정치스캔들 못지 않은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감독 지시로 반칙…죄송" 고백

사건은 지난 5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혼대학교와 간세이가쿠인대학교(이하 간가쿠대)의 미식축구 정기전. 두 대학은 오랜 라이벌 관계로 이날 경기에선 유독 거친 플레이가 펼쳐졌다. 경기 초반, 공을 패스한 간가쿠대 선수 뒤로 니혼대 선수가 태클 공격을 걸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백태클 공격을 받은 선수는 뒤로 허리가 꺾이면서 넘어졌다. 이 선수는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다. 사건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사건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니혼대 선수들로부터 "감독이 반칙을 하도록 시켰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부터다. 우치다 마사토 니혼대 감독은 "상대팀 쿼터백 선수를 쓰러뜨려라"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반칙하라는 얘기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경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뛰라는 얘기였지 "의도적으로 난폭한 행위를 하라고 선수에게 가르친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우치다 감독은 "'쓰러뜨려라'라는 건 흔하게 쓰는 말이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 받아들이는 방식의 괴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타쿠, 아베 정권 관료 닮은꼴

그렇다면 선수는 정말 지시를 잘못 알아듣고 반칙행위를 했던 걸까. 팀 동료 선수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감독의 지시는 절대적이며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니혼대 선수들은 성명을 내고 "감독과 코치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라왔다. 커뮤니케이션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팀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선수는 지시를 받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손타쿠'(윗사람의 뜻을 알아서 헤아려 행동함) 즉, 감독의 뜻이라 생각하고 반칙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이 이 사건을 정치스캔들처럼 흥미 있게 다루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 있다. 아베 정권을 둘러싼 모리토모, 가케학원 비리 의혹에서 관료들이 보여준 '손타쿠'가 대학캠퍼스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것. 많은 일본인들이 "위로 고개를 쳐들어선 안 된다는 일본의 정신문화가 오랜 시간 배양된 것"이라는데 공감했다.

특히 우치다 감독은 하위권이었던 니혼대 미식축구팀을 17년만에 전국대회 우승팀으로 키운 미식축구계 최고 실력자였다. 학교 재단에선 이사장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상무이사직도 겸하고 있다. 선수들의 취업에도 감독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니혼대 미식축구 팀은 '감독 1강'의 세계였던 셈이다.

이번 사건이 부카츠(서클 활동) 도중 벌어졌다는 점도 많은 일본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니혼대 우치다 감독의 폭행 등 혹독한 훈련방식이 알려지면서 "나도 학창시절 지도교사로부터 폭언을 듣거나 심한 정신적 압박감을 경험했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전국 학교에 뿌리내리고 있는 부카츠는 일본 생활체육의 힘이기도 하지만, 시합성적이나 메달 획득에 매달린 나머지 본래 부카츠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블랙 부카츠'의 저자 우치다 료 준교수는 아사히신문에 "부카츠는 강팀일수록 감독의 권력이 세지기 쉽다. 감독이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반칙을 한 당사자인 미야가와 선수의 용기 있는 행동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그는 니혼대가 변명으로 일관할 때 홀로 기자회견을 열고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 스스로 "더 이상 미식축구를 할 자격이 없다"며 그만두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치권 실종 진실 고백에 박수

기자회견을 지켜본 외무성 간부는 "갓 스무살이 된 선수가 혼자 속앓이 했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날 뻔했다"고까지 말했다. 특히 사건 발생 13일 만에 마지못해 억지 사과를 한 우치다 감독과 대비됐다.

결국 지난달 29일 니혼대가 소속된 간토 지역 학생미식축구 연맹은 임시이사회를 열고 니혼대 감독과 코치에 대해 초유의 '제명' 처분을 결정했다. "선수를 궁지로 몰아넣어 상대팀에 부상을 입히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며 "지도자로서 실격"이라는 판단이 뒤따랐다.

현실 정치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진실 규명과 정의회복이 이뤄진 것은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반전이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열광한 세 번째 이유다. 미야가와 선수에 대한 처분은 유보했다. 깊이 반성하고 있고 아직 스무 살이라는 점, 팀 동료선수들의 반성문이 영향을 미쳤다. 간가쿠대가 니혼대 감독과 코치를 상해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여서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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