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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건 정말 싫어”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7/08/01 22:23

아이가 싫어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부모들은 자녀가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게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나중에 좀더 자기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하려고, 어릴 때 악기를 하면 두뇌 개발에 좋다니까, 혹은 음악적인 소양이 있어 보여 개발해 주고 싶어서 등등---.

비싼 악기를 사야 하고, 레슨 비용도 적지 않은데다, 먼 곳으로 강습 받으러 데리고 다니랴---. 나중엔 아이가 배우는지, 엄마가 배우는지 주객이 전도되고 연습은 전쟁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방면에 전문가가 아니어서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지만 적어도 힘들어 하고 싫어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이유를 충분히 들어주고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은 다시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하는 사례들을 본다.


악기 연습 때문에 그 소중한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까지 나빠져 버린 집에서 엄마의 노력으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가정의 사례를 본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과 마찰이 잦은 문제 중의 하나는 악기 연습이다.


큰 딸은 플루트, 작은 딸은 첼로를 하고 있는데 특히 작은 아이가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라 매일 꼬박꼬박 해야 하는 첼로 연습을 아주 싫어 한다.


게다가 지난 번에 한 번 본 오디션을 또 본다고 연락이 왔다.
지난 번 오디션도 싫다는 것을 겨우겨우 달래서 보게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성질 강한 아이와 한바탕 해야 하나?
오래오래 생각해 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요즈음 받고 있는 부모 교육 시간에 선생님이 빌려주신 책 열심히 읽고 오늘은 화내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리라 마음 먹었다.


평소처럼 연습하고 있는 아이한테 오디션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졸이면서 마주 했다.


엄마: (평소 보다 부드럽게 말문을 열었다)정미가 오늘 연습이 잘 되나 보다.
소리가 참 좋은데---.
아이: (별 말이 없다.
원래 연습하는 걸 싫어하니까) ----

엄마: 다음 레슨 때는 진도가 잘 나가겠다.
칭찬받을 것 같애.
아이: (대뜸 짜증난 목소리로) 그런데 오디션 곡 또 연습 해야 돼? 지난 번에 한 번 했으면 됐지 왜 또 한다는 거야? (아주 단호하게) 두 번은 안볼거야!

엄마: (속으로 심 호흡을 한번 하고) 그러게 말이야. 딴 것 연습할 것도 많은데---. 두 번씩이나 오디션을 본대니 부담스럽고 짜증나겠다.


아이: 오디션 보나마나 메리(오디션 심사 선생님)는 자기가 가르치는 얘들 중에서 뽑을 텐데 뭐.

엄마: (그럴 리가 있겠니? 아닐 거야, 실력이 제일이지 등등 위로하거나 물어보는 것 등은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에 방해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메리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이 주로 뽑혀서 너는 이번 오디션에서 떨어질까 봐 불안하구나.

아이: (목소리가 높아 지면서) 나는 또 지난 번 학교 체육 대회 때문에 리허설에 자주 빠져서 더 안 뽑아 줄 거란 말이야. 게다가 지휘자는 너무 심통 맞아! 신곡도 한 번만 맞추어 보고선 다음 시간에 한 명씩 지적해서 시키는데 못하면 창피 준단 말이야!

엄마: (평소였으면 네가 열심히 연습 안 하니까 그렇지! 했을 텐데 아이의 마음을 알아 주려는 노력으로 다가서고 보니 얼마나 창피 했을까 싶었다) 그래서 너도 지휘자에게 창피 당한 적이 있었구나. 정말 속상했겠다.


아이: 그리고 우리 그룹에는 나보다 나이 어린 아이들이 더 많아서 가고 싶지가 않아. 이번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또 이 그룹과 한 해를 더 해야 되는데 (볼 멘 목소리로) 이번에 안되면 오케스트라 중단하고! (단골 메뉴임) 실력 더 길러서 나중에 씨니어로 들어가면 안될까?

엄마: (오케스트라 중단하겠다는 말만 나오면 열 받았으니까, 열 받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다시 한 번 하고) 그래, 너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은 그룹에서 연습하려면 자존심 많이 상하겠다.


아이: 체육 연습 하느라 하필이면 너무 피곤한 날 나를 지적해서 창피를 당했단 말이야!

엄마: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래서 못한거니 더 자존심 상했구나.

아이: 응! 엄마, 오디션은 첼로 선생님 하고 한 번 더 상의해 볼래!

엄마: 야! 우리 정미 마음의 준비가 되는구나! 그래, 조금만 더 연습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파이팅!!!

<누구나 악기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위의 엄마는 ‘이해하면서 듣기’로 아이가 오디션에 예민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아이는 이해해주는 엄마를 통해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이와 이렇게 긴 대화를 해 보았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즐길 수 있을 만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고 좌절스러운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좌절스럽기만 했던 내 경험 중의 하나가 악기 연습이다.


피아노도 시도해 보았고 기타 배우기, 우쿠룰레---. 피아노든 기타이든 피나게 연습해도 악보 없이는 짧고 간단한 곡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지금 내가 악보 없이 자신있게 칠 수 있는 곡은 ‘도도 솔솔 라라 솔’ 수준이다.


내가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 그리 행복한 기억은 아니다.


지금도 악보도 없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니까 나도 멋지게 플루트를 불어보고 싶기도 하고 커다란 첼로를 멋스럽게 끌어안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를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아들에게 적어도 피아노 정도의 기본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피는 못 속이는지 아들도 유치원 때부터 4년을 배웠는데도 영 재미를 못 붙인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단다.
시간과 돈만 버린 셈이다.


악기 한 개 정도 연주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 받을 때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되겠고 좀더 인생이 풍요로워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꼭 악기 연주하는 것만이 그런 것들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악기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재미없는걸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는데 혹시 아이의 지독히 재미없는 일 중의 하나가 악기 연주가 아닌지 잘 살펴 보는 일도 시간과 돈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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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키즈빌리지 몬테소리스쿨 원장
한국심리상담연구소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전문 강사
BC Council for Families 주관 Nobody's Perfect 의 facilitator
문의 604-931-8138 , kidsvillage@sha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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