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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특파원의 방북 취재기 <1> '북한도 우리 땅이다'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2/05/28 22:04

방북에 앞서...이북 가는 사람들

밴쿠버 지역 15명의 한인이 25일 평양을 들어간다.
아리랑 축전의 관람객 자격으로 4박5일 동안 평양, 개성, 묘향산 등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관광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사람을 사서라도 이북 가족들의 생사와 소식처를 확인해 보려는 애틋한 심정을 지니고 간다.

또 다른 일부는 북한과의 무역, 북한 선교 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계획이다.
북한은 이렇듯 단순한 관광만으로 가기는 너무나 깊은 사연을 지닌 곳이다.

서울 출신, 30대 중반의 기자가 이들을 따라간다.
기자는 이북 출신의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향민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적도 없다.
80년대 후반 한국에서 대학을 다녀 통일에 대한 열기를 다소 체험 했지만 전후세대가 대다수 그렇듯 머리에서만 그칠 뿐 가슴까지 내려오기가 힘들었다.

이런 기자가 이북 가는 사람들을 따라 나선 이유는 단 하나다.
북한과 그 곳의 사람들이 과연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더 늦기 전에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구에서다.

북한으로 떠나기 앞서 사람들에게 물어 봤다.
그들은 평소에 북한과 그 주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그 대답이 천차만별이라는 데 기자는 우선 놀랐다.

사는 형제를 대가 없이 도와야 한다는 '혈연 당위론'에서부터 50년 이상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이 무슨 형제냐 지구상에 수많은 국가 중 또 다른 나라일 뿐이다, 우리도 지금 먹고 살기 힘든데 누가 누굴 돕는다는 것인가라는 '별개 국가론'에 이르기까지 극에서 극을 달렸다.

그 중간쯤에는 남한의 미래를 위해서도 북한의 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절대 필요하다는 주장 위에 민족을 운운하는 실리론이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그 스펙트럼의 폭이 너무나 큰 나머지 취재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망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2세의 말에서 현재 한민족이 주고 받는 관계성의 마지노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박득원(28세)씨는 평소 북한에 대해 "많은 생각은 없었지만 백두산 부근 영토를 중국에 팔았다고 했을 때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통일을 이뤄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의 코리아를 만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이 밝힌 그의 사고에는 '북한도 우리 땅이다', '북한도 또 하나의 코리아다'라는 바탕이 깔려 있다.
2세인 그에게도 북한은 남이 아니라는 생각은 뚜렷했다.
이렇듯 한국말을 쓰고 한민족이라는 터울 안에 들어오는 이들이라면 북한 주민은 '각별한 사람들'이다.

이번에 북한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사연과 목적은 달라도 한가지 특수한 처지를 공유한다.
분단의 한반도를 떠났음에도 민족의 '업보'를 나누는 해외 한인들이라는 사실이다.

해외 한인은 한반도에 사는 이들에 비해 좀 다른 면을 지닌다.
무엇보다 냉전의 기운이 아직 감도는 그 땅의 자력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북한이 분단이래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문을 연 이번 아리랑 축전에도 남한의 사람들은 갈 수 없지만 해외 한인들은 영주권자까지 환영 받았다.
남북한 당국자간의 이산가족 상봉이 논의되기 전에도 해외 한인들은 부분적으로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으며 북한은 이를 위해 '해외동포 원호위원회'라는 부서를 둘 정도로 해외 한인들을 남한의 사람들과 다르게 취급해왔다.

특히 캐나다의 한인과 북한의 관계는 남다르다.
국제무대에서 중립적 외교로 미국과 또 다른 위상을 쌓아온 나라의 국민이라는 배경은 북한과의 교류에서 커다란 운신의 폭을 얻을 수 있었다.

캘거리의 한 목사가 남북한 화해국면 이전부터 북한에서 의료선교를 펼치고 있으며 토론토의 작고한 한 교민은 해외 한인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주선하는 메신저 역할을 오랫동안 담당했다.

일반적으로도 이북의 가족을 찾겠다는 희망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캐나다에 유달리 많고 북한과의 교역이나 선교를 꿈꾸는 이들이 현실감 있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는 것만 봐도 한인들은 벌써 캐나다가 지닌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UBC가 교환교수로 북한 학자를 받아들였으며 북한의 농업 관계 고위층이 캐나다곡물은행의 주선으로 선진 농업기술을 견학하기 위해 여러 번 다녀가는 등 일련의 포착된 사실들은 캐나다만이 누릴 수 있는 북한과의 민간교류의 깊이를 시사한다.

통일이라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해외 한인들은 또 다른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
생활.사고방식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경험을 이미 쌓았기에 통일된 한반도의 시민으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을 이미 터득한 사람들이다.

91년 12월 13일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 1조1항이 밝히듯 남북 통일의 첫 걸음은 '남북의 상호인정과 존중'이다.
달리 살아온 맥락과 그 속에서 파생된 다른 가치들을 인정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목의 시발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일민족' '단일언어' 등 단일성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한반도의 사람들은 이질적인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휴전선 양편의 사람들이 이 점만은 유일하게 똑같다.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이다.

이에 반해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사는 북미에서도 복합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캐나다의 이민자로서의 삶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우리를 익숙케 했다.

상호인정과 존중은 바로 이런 눈을 필요로 한다.
다른 가치를 내 위주로 각색해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사람의 시각에서 그 본의를 일단 파악할 줄 아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캐나다의 한인은 이 점에서 통일을 위한 중요한 사람들로 자리매김 된다.
반세기를 넘게 달리 살아온 남북한의 국민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오해를 불식시켜주고 자신과 다른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가 북한과 그 곳의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시기가 언제든, 그 형태가 무엇이든 통일이 흩어진 한민족의 역량을 모으고, 자유로운 왕래와 소통이 이뤄지며,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민족 공동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캐나다의 한인부터가 북한 주민과 만나서 그 눈을 키워야 한다.

이번에 이북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기자는 실제의 북한을 마주대할 그들과 기자 자신의 체험을 통해 '북한의 가치'를 '북한식'으로 파악하는 실험을 한번 벌여볼 생각이다.

협찬 : 대한항공 밴쿠버지사 / 한카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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