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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특파원의 방북 취재기 <2> '만나니 통했다'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2/06/01 16:51

아리랑 축전 관람 한인들 "와 보길 잘했다

핏줄은 사상과 체재보다 강했다.

신변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한 채 25일 평양에 들어갔던 밴쿠버 지역 한인 16명은 민족과 통일이란 두 이름 앞에 마음을 놓았고 이들을 맞아줬던 북한 관계자들은 신랄한 정치적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포용적 자세를 잃지 않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줬다.

서로의 가치와 신념을 인정한다면 대화는 얼마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얻었다는 게 이번 북한 방문의 가장 큰 소득이다.

4박5일 동안 아리랑 축제를 비롯해 평양, 개성, 판문점, 묘향산 등지를 둘러 봤던 한인들은 "와 보길 잘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따라 월남한 K씨는 "여행 내내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나보니 예상 외로 정이 통하고 말이 통했다"며 "그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온 세월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오해와 불신을 만들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북청이 고향이라는 D씨는 "위정자들에게 속아온 세월이 너무 야속하다"며 "백성들이 만나야 통일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행 첫 날 순안 비행장을 빠져 나와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헌화할 때까지만 해도 한인들의 마음은 불편했다.
비록 관례적인 절차라 여겼음에도 개인숭배에 대한 느낌을 버리지 못했던 한인들은 고객 숙이는 동작조차 부담스러웠다.

이들은 그러나 안내원을 비롯한 여러 북한인들과 어울리는 동안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게 됐고 '남의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의 예를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주체사상 탑과 김일성 주석이 내세운 통일 원칙을 형상화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관' 앞에서 설명에 경청하며 기념 촬영을 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인한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내원들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과 존경심을 줄곧 강조했으며 이에 대해 밴쿠버 한인들은 대부분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중 일부는 "정서가 다른 외부인에게 김 부자에 대한 숭배를 외쳐대면 그것이 먹힐 줄 아느냐"며 "우리가 당신들을 존중하듯 당신들도 우리를 존중해 줘야 할 것이다"고 반발했다.

북한 안내원들은 이들의 뜻밖의 반응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차관급 고위 간부에게 보고,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새벽 3시반까지 열띤 토론을 벌일 끝에 다음날 고위 간부가 밴쿠버 한인들을 초청하는 형식의 회의가 이뤄졌다.

이 회의에서 간부는 수령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설명하며 한인들의 이해를 구했다.
이에 대해 한인들은 진정한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응수했다.

일부 한인들은 자신들이 이번 관광에 참석한 진짜 이유가 이산가족 상봉 또는 찾는 일에 있다며 북 당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간부는 부처간 사전 협의 없이 즉흥적인 가족 상봉은 어렵다고 설명하면서도 "해외 동포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기에 언제든 다시 오십시요. 받아 줄 것을 약속합니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이날 한인들에게 신뢰의 표시로 김일성 초상기장을 전달했다.
애당초 호기심에 '김일성 뺏지'로 외부에 알려진 이 기장을 얻고자 했던 한인들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수령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그들의 자긍심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경건한 호의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안내원들도 다음날 월남 출신 한인들에게 가족의 신원 파악을 위한 신청서를 접수받으며 가족 찾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밴쿠버 한인들이 북한을 떠날 때까지 김일성 부자에 대해 언급하는 안내원을 찾을 수 없었다.

평양=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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