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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인민' 사이 줄타기 한창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2/07/02 18:34

개인적 성공 모티브 수 차례 감지...
집단 윤리 아직은 건설적 힘으로 작용

평양 방문 이틀째 오후 여정.
각자의 평가야 어떻든 북한 땅에서 주일 예배를 볼 수 있던 우리 일행은 그 감흥을 간직한 채 평양10경 중 하나라는 을밀대와 냉면의 대명사 옥류관을 내쳐돌며 눈과 입을 잇따라 즐겁게 했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금수산 모란봉에서도 북쪽 끝에 장대로 서서 대동강의 휘감아도는 강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을밀대는 사허정(四虛亭)이란 옛 이름 그대로 사방이 확 트이며 가릴 게 없었다.
멀리 대동강 너머 동평양이 한 눈에 들어오고 왼편으론 다음날 아리랑 축전을 보러 갈 5.1 경기장이 능라도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찾아간 때가 봄의 끝무렵이라 '을밀상춘'의 진면목은 접할 수 없었지만 앞서 찾아간 남한의 작가 김주영이 이 곳을 들려 '이런 자연풍광 속에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연애 감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고 감탄했듯이 그 정취와 정감은 낯선 세계에 온 긴장을 풀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 소설가는 여기서 대낮부터 연애하는 남녀를 발견하고서 '북한 땅에도 사람은 산다'고 외쳤는데, 기자도 모란봉 줄기를 따라 내려오다가 비슷한 광경을 발견했다.
어디선가 자지러지게 장구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높고도 맑은 창이 뒤따랐다.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놓는 것으로 봐 필시 판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내원이 "고저 그냥 가자우야"라고 만류하는 것을 "이런 광경을 사진에 담아 보여 줘야 밖(북한 밖)의 사람들도 여기가 사람 사는 세상임을 알게 된다"고 설득하고는 일행을 이탈한 채 비탈길을 타 내렸다.

웅성거리는 데를 당도해 보니 정자 하나가 서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백여 명은 족히 돼보였다.
모두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늙은 아낙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장구를 메고 목소리를 돋구는 사람은 3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높낮이와 속도를 달리해 가며 간드러지게 부르는 그 소리에 맞춰 아낙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뒷켠으로 돌아가니 물가에서도 다른 패들이 무리를 져 흥에 취해 있었다.
뜻밖에 본 평양 주민들의 봄맞이 광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런 무리들이 숲 속에 점점이 박혀 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화살을 던져 통 속에 넣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대동강변에 큰 한옥집으로 자리잡은 옥류관의 냉면은 국물이 아니라 면발에 식초를 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과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원료로 만들어 감자를 쓴 함흥식보다 면발이 검다는 사실 등을 들어가며 점심을 마친 우리는 오후 일정에 들어갔다.
평양으로 들어오던 날 시가지가 크고 작은 기념비적 구조물들의 조각공원처럼 느꼈던 인상은 그 첫 행선지인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관에서 더욱 굳어졌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통일 신념을 형상화한 이 기념관은 통일로가 끝나고 판문각행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시 경계에 아치 모양의 대형문으로 세워져 있었다.
한복차림의 두 여성이 한반도 지도를 두 손으로 쳐들며 잇대어 있는 몸체 아래로는 통일을 염원하는 인민들의 갖가지 모습이 동판에 새겨 있었으며 비교적 새 건물답게(김 주석 사망 직후에 세워짐) 화강암의 흰색이 바래지 않았다.

한인들 중에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강사가 "3일 밤 자고 오겠다던 남편이 반백이 다 된 아내를 만나 상봉하는 장면입니다"고 말하며 통일 3대 원칙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았다.
스스로가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는 장본인이어서 그렇겠지만 자주, 평화, 민족이란 단어들이 예전처럼 거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은 2년전 남북간에 있었던 6.15 공동선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의 공식 일정으로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광복거리에 있는 만경대소년학생궁전. 어린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북한에서는 소조 활동이라 부름)을 하는 대규모 실습장으로 총 10만3천여평방미터의 건물 안에 과학, 예술, 체육 부문 소조실과 2천석 극장, 체육관, 수영관 등 시설을 갖추고 매일 1만2천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안내원은 이 곳을 들어가기 앞서 "김일성 장군님께서 생전에 '우리 얘들은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조국의 일꾼이다.
빚을 지더라도 잘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국가는 고난의 행군을 할 때도 애들만은 굶지 않게 먹이고 그들을 가르치는 교원(교사)도 똑같이 먹였다"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 말 저 말을 맞춰본 결과 평양 시내 모든 학생들이 이 훌륭한 시설과 교육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다.
각 부문에서 자질을 보이는 학생들이 선발됐으며 그 중에 반 정도는 지방에서 특별히 뽑혀 올라온 인재들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북한 엘리트교육의 산실인 셈이다.

또 한편, 이 곳은 외국인들에게 북한 어린이들의 재능을 선보이는 관광명소도 겸했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축전 기간 중 외국인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학생들은 나와 있었고 각 관광팀이 소조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원의 지시를 받으며 기량의 한 대목씩을 선보였다.
몇 년 전 서울을 찾았던 평양학생 예술공연단의 화려한 연기가 바로 이 곳에서 갈고 닦아졌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보는 눈에 따라 어린 학생들이 휴일을 모르고 국가 선전에 이용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여기서 만난 학생들은 자기가 국위선양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기자가 안내를 맡아 준 한 학생에게 "일요일에도 손님 치르느라 고생이 많다"며 노고를 치하하자 그 학생은 "고생은 무슨 고생이야요. 손님을 잘 대접하면 우리 공화국에 이로운 일이고 다른 사람도 많은데 제가 그 일을 맡게 된 게 자랑스럽지요"라고 대답했다.

전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한 주민으로부터 자기 자식이 뙤약볕 고된 훈련에 동원돼야 하는 '아리랑 축전'에 참여한다는 것을 뿌듯한 듯 말하던 것을 들었던 기자로서는 이 말이 준비된 답변이기보다는 사실에 가깝게 들렸다.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과 김일성 숭배사상에 진실로 충실하다면 개인보다는 인민 전체를 위하고, 무엇보다 "수령님으로부터 받은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그 길을 마다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다른 공산주의 사회와 사상적으로 분명히 선을 긋고 싶어하는 점이 이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내가 더 고생할 필요가 없다'라는 사회주의적 사고의 맹점을 북한 체재는 '수령 아버지'에 대한 충성과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는 주체적 사고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사회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개인적인 성공의 모티브가 작용한다는 것을 수 차례 감지할 수 있었지만 집단주의적 사회 윤리가 건설적인 힘으로 개개인을 북돋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비쳐졌다.


*** 박스 ***
"공부해 공부, 앞으론 정보산업시대야"

북에서 본 개인적 성공의 모티브

북한에도 개인적 성공이 하나의 성취동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집단주의적 사회 윤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 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절충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들은 말들.

-만경대소년학생궁전에서 만난 한 학생(12세.숙전고등중학교 재학)
"반에서 몇 등하니" "3등해요" / "공부 잘하네" "잘하긴 뭐가 잘해요, 내 앞으로 2명이나 더 있는데. 그 애들 앞서야 잘 하는 거지요...우리 학교도 평양 제일이에요."
-같은 장소 다른 학생
"부모님께 야단 맞은 적 있니?" "공부 안하고 하루 종일 썰매 탔다고 엄마에게 혼났어요"
-밤에 만난 한 대학생, "사람들이 모두 대학을 가길 원한다.
무엇보다 지식인으로서 대우 받을 수 있으며 결혼할 사람을 고를 때도 본다.
"
-한 안내원 "자식들이 농땡이 부릴 땐 '공부해 공부, 앞으로는 정보산업시대야'라며 다그친다.
내 아내는 매일 밤 숙제를 검사해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자는 애를 깨워서라도 시킨다"
-다른 안내원
"북한에선 어떤 직업이 선망됩니까?" / "우린 그런 거 없습네다.
공화국에선 높고 낮은 거 없습네다.
..(다른 말 애기 끝에) 우리 직업(안내원)은 서로 다퉈 하려 합네다.
"
"특별한 기술을 발명한 기술자의 경우 수령님이 생활을 특별히 보장해 줍네다.
" / "북에서도 개인의 능력을 인정해 특별대우를 해주는 군요" / "그럼요, 고런 것 없이는 누가 그 고생을 사서 합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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