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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연도 정리 일기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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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2/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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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이 시작되었다. 이 맘 때 쯤 개인적으로 하는 연례 행사가 있다. 한 해를 글로 정리해 보는 것. 그래서 조금이나마 다가올 다음 해를 스스로 점쳐 보는 일.

2013년에 시작된 미국으로의 결혼 이민은 의도하지 않게 내게 ‘홀로 있을 시간’을 선물해 줬다. 한국에서 삼십 년 동안 만들어 놓았던 친구들,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태평양을 건너면서 톡 하고 끊어졌다. 한국에서라면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며 일상의 위안을 얻었던 시간들이 텅 비고 말았다. 이 시간을 나는 일기로 채웠다.

일기는 참으로 편안하고 오래된 소파 같다. 그 안에 앉아서 서글퍼지면 눈물을 툭 툭 흘리기도 하고, 화가 나면 주먹으로 소파를 쳐도 소파는 말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와 감정이 차단된 곳에서 나 홀로 스스로 감정과 생각들을 언어로 배출할 수 있는 곳이 일기장이다. 그 일기의 한 해 정리 버전이 연도 정리 일기다.

연도 정리 일기는 별다른 형식이 없다. 그저 이리 저리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면 된다. 나의 경우, 일기의 형식을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로 나누어서 쓴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이 형식이 단순하고, 기억을 떠 올리기에 편하다. 먼저 올 한 해 행복했던 일, 좋은 인연들 등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었던 기억에 대해 써 본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반대의 경험을 써 본다. 힘들었거나, 아팠거나, 그리하여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서 써 본다.

연도 정리 일기의 힘은 그 과정에 있다. 한 해에 있었던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 ‘아, 그래. 그랬었지!’ 하는 마음으로 써 보면,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어떤 ‘아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또한 한 해 있었던 부정적인 일에 대해 쓸 때도 바로 어제의 일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거리 두기가 되어서 써 볼 수 있게 된다. 왜 이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었던가. 현재 내 마음은 어떠한가. 물론 깨달음의 순간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차분하게 써 내려가는 과정을 즐기는 일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이 연도 정리의 일기는 누군가를 위해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독자는 오직 한 사람. 나 자신이다. 그래서 글 치장을 할 필요도 없고, ‘솔직 담백하게 내 맨 얼굴을 들여다본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최근에 생긴 나의 취미는 ‘일 년 전 이맘때의 일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작년엔 내가 뭘 하고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지? 이런 행동은 사진을 보는 일과 또 다른 맛이다. 한 해 전의 사진을 바라보면 빛이 바래 있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자족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래도 너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너 이 머나먼 땅에서 친구 가족 없이 잘 버텨 왔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는 것처럼 자신의 내공을 쌓는 일이 또 있을까?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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