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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리마에서의 마지막 밤

조소현/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2017년 8월 페루 여행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엄마는 페루에서 현재 약 9개월째 거주 중이시다. 한국어 교육으로 국립대학교에서 코이카 단원으로 일하는 엄마를 보러 미국에서 처음으로 라틴 아메리카에 가 보게 되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이리 저리 투닥거리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의 체력을 철없는 내가 질타하기도 하면서도, 여행을 완수해 나갔다. 마추픽추를 보았고, 감탄했고, 감사해 하면서 다시 리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날 밤 나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엄마는 10시경 엄마가 사는 도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리마까지 왔는데, 구시가지는 꼭 보고 가야 한다”며 마지막 관람지를 리마 구시가지로 정했다. 호텔 안내 데스크에 짐을 맡겨 놓고, 구시가지로 가는 교통수단을 물었다. 얼굴이 가무 잡잡한 페루인 청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아마 오늘 집회가 있을 수 있으니, 만약 목적지까지 버스가 안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걸어 가시면 됩니다.” 라고 웃으면서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마지막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서둘러 떠났다.

구시가지는 페루의 수도답게 화려한 왕궁과 교회, 박물관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선 관람에 앞서 허기진 배를 채운 곳은 교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었다. 역시나 정부 건물 주변의 식당이라 양복입은 관료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왔고, 그들의 입맛을 채워줘야 하는 식당인지라 비싸지 않은 가격에 비해 맛도 좋았다.



높은 천장에 나무 장식이며 페루의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모던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져 있었다. 특히나 진한 보라색의 ‘치차 모라다’ 라는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현지 음료수가 달달한 것이 참 좋았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튀기고 채소 샐러드를 사이드로 내온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가이드 투어를 하고 따사로운 페루의 겨울 8월 날씨를 즐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학 박물관이 있기에 들어가 봤더니, 영어 가이드가 없어서 스페인어의 스 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문학 박물관 바로 앞이 대통령 궁이었다.

이상하게 도 이 날은 오직 관광객들만 이 공간을 허용해 주었다. 대통령 궁 뒤에는 리마의 모든 검은색 반짝이는 고급차들은 모두 모여 있는것 같았다. 대통령 궁 근처를 걸어 다니다 다리가 아파 계단에 앉아 쉬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우리처럼 그 조용한 대통령 궁 앞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한가로운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세시가 넘어갔다. 우리는 슬슬 발길을 돌려 다시 호텔로 돌아가 짐을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하며 대통령 궁 밖으로 나왔다. 경찰들이 일반 시민들은 이 광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에, 광장을 벗어나자 갑자기 명동 한 바닥에 온 것처럼 사람들로 득시글 거렸다. 북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삽시간에 우리처럼 북쪽으로 걸어가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다시 남쪽으로 향해 뛰었다.

그 곳에는 수녀들도 있었는데, 그녀들 역시 발걸음을 돌려 광장으로 돌아가고 잇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라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급박한 상황이었다. 막연하고 엉뚱하게 ‘혹시 총기 사건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욱 긴박해지고, 모두가 정신없이 뛰었다. 그것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알고보니 수백 명의 집회 행렬이 대통령 궁쪽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 집회 행렬을 뚫어야 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는 안났다. 그래도 육십대 엄마를 삼십대 딸인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더불어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해!’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엄마의 팔을 잡고, 그냥 아무 버스라도 타고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눈 앞에 보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스페인어도 안되고, 버스의 방향도 모르지만 오직 ‘여기만 빠져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버스에 타니 몇 분 동안은 그래도 좀 안전한 느낌이었다. 집회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휴. 그래도 저 행렬에 휩쓸려 가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라고 안도의 숨을 쉬려는데 버스 안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인상을 썼다.

시야가 희부연해지면서 맵고도 매쾌한 흰 연기가 차 안을 채웠다. ‘영초 언니’라는 소설에서 읽은 그 최루탄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맡은 최루탄은 정말로 지독하고 독했다. 눈에서 눈물이 나고, 목이 매쾌해지고, 앞을 잘 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버스의 방향을 보더니 빨리 내려야 한다고 했다. “안전 교육 받을 때, 리마에서 저 산쪽으로 넘어가면 빈민 지역이라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어. 절대로 저기로 가면 안된대.” 앗뿔싸. 현지 사정도 모르고 말도 할 줄 모르면서, 무조건 시위 현장만 벗어나야 한다는 내 생각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버렸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우리가 왔던 구시가지로 돌아왔다.

“경찰에 부탁해야해!” “뭐라고? 경찰? 말도 안돼! 우리가 무슨 고위 관료도 아니고, 경찰들이 우리를 뭐라고 도와주겠어?” 엄마는 정말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경찰을 붙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또 다시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시위대들이 대통령 궁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의 주책을 말릴세도 없이 엄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바리케이드 앞에 있는 경찰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아유다메, 뽀르빠보르” 제발 도와주세요를 몇번이나 연발하며, 서바이벌 스페인어를 구사하셨다. 어찌어찌 알아들은 그 남자가 청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 두 명을 불렀다.

이들은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지갑에서 경찰 뱃지를 보여줬다. 사복 경찰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최루탄으로 범벅이된 혼돈과 혼란의 구시가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호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집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무용담 들려주듯이 몇십분 전의 상황을 말했더니, 그녀 역시 평화롭고도 정다운 웃음을 지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그건 현재 교사들이 월급 올려달라고 삼개월째 그 집회를 하고 있어요.

나도 어렸을 때 동네에서 최루탄 맞은 적이 있는데, 생수로 몇번이나 얼굴을 닦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나는 교사의 월급이 얼마냐,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돈을 많이 버냐 등을 물어봤다. 교사들은 한달에 300달러 정도 벌고,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이라고 한다.

열흘 남짓한 나의 페루 여행은 촉촉한 아침 안개가 풍경처럼 펼쳐져 있는 리마의 바닷가 산책로, 고도가 높은 마추픽추의 웅장한 산들과 신성한 느낌마저 드는 그 자태, 야마르 라고 불리는 처음보는 동물, 고대 잉카인들과 스페인 정복자들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역사적인 쿠스코의 교회들, 트루히요의 고대 문화 유적 찬찬, 보라빛 음료 치차 모라다와 해산물로 만들어진 세비체 등 시간 여행 맛여행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을 여행지는 리마 구시가지의 최루탄과 눈물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리마에 가면 그 곳의 법과 규칙, 문화를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한다.

조소현/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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