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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이문열과 민음사

한길사, 백산, 돌베개, 풀빛, 까치….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들이 서가를 채우던 시절, 관련 책을 펴내던 출판사들이다. 민주화를 위한 진통을 겪던 당시, 이들 책을 읽는 것은 길이 보이지 않던 현실을 들여다 보고 고뇌하는 과정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이름의 사회운동었던 셈이다.

사회과학 서적들과 함께 일조각, 을유문화사, 법문사 같은 출판사들이 펴낸 전공서적들, 문학과 지성, 나남, 민음사 같은 출판사들이 펴낸 문학 작품들이 책장을 채우던 시절이었다.

'민중의 올곧은 소리'를 담겠다는 민음(民音)사는 작가 이문열과 함께 1980년대 이후 한국 문학 출판계를 이끌었다. 1979년 서울 종로구청 앞 청진동의 허름한 옥탑방에서 만난 박맹호 민음사 회장과 신예작가 이문열이 의기투합, '사람의 아들'을 시작으로 '젊은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며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성장했다.

'삼국지'까지 포함, 민음사가 판매한 이문열 책만 3,000만부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 전 세계 어느 곳에 살던 한국인 가정의 책장에는 이들이 함께 펴낸 책이 한 두 권은 꽂혀 있을 것이다.



이문열과 민음사가 올 연말을 끝으로 40년 인연을 매듭짓고 결별한다. 2년 전 박맹호 회장이 타계한 후 출판사를 물려 받은 2세 경영자와 새로운 출판 시스템이 어느새 70대에 이른 노(老) 작가와의 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절한 연인도, 매일 만나던 친구도 헤어질 수 있는데, 비즈니스로 맺어진 관계가 그 이상 넘어서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문열과 민음사가 관계를 정리하게 된 속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79년 박맹호-이문열과 2019년 출판그룹 민음사-이문열의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음사와 이문열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소식은 왠지 가슴 한 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문득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책장 앞을 서성이며 민음사가 출판한 이문열의 책들을 찾아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본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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