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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칼럼] 목화는 미국 역사의 산 증인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9/09/17  0면 기사입력 2019/09/16 15:11

우리는 ‘목화’라는 말만 들어도 문익점이라는 사람 이름을 떠올린다. 문익점이 우리 역사에 눈에 띌만한 공헌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익점은 고려 말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와서 우리나라에 목화가 퍼지게 되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긴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관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원나라가 목화씨를 중국 이외의 나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금지한 것은 사실이고,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어쨌든 목화는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의 의복 생활에 크나큰 보탬을 주는 작물이다.

목화가 인간에게 엄청난 이로움을 주고 있지만, 모든 생물과 광물이 그렇듯이 목화가 일부러 인간을 위해 솜을 만든 것은 아니다. 민들레는 자신의 씨앗에 낙하산처럼 생긴 깃털을 붙여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게 한다. 자신의 씨앗을 멀리 보내서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목화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씨앗에 솜을 붙여 바람에 멀리 날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그 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뿐이다. 목화는 인간에게 보온의 수단인 솜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로 만들어 천을 만들면 훌륭한 의복이 되므로 인간을 따뜻하게 멋 내며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면직물은 아직도 우리가 매우 선호하는 의복 재료이다. 합성섬유보다 건강에 면직물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목화의 원산지는 인도 고원지대라고 알려졌지만, 멕시코, 페루 등 남아메리카의 유적에서 4000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인류가 지구에 퍼지기 이전에 이미 오래전에 세계 곳곳에 곳곳에 퍼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집트에서도 오래전에 목화를 재배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목화씨가 목화솜에 싸여 바닷물에도 잘 뜨기 때문에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목화는 주로 온난하고 건조한 지역이 적합한 곳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인도의 고원 지대에서 주로 많이 생산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목화씨를 문익점이 붓두껍에 넣어 오기 전에 이미 목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증거가 있다고 한다. 다만, 원래의 목화가 우리 기후에 잘 맞지 않아 많이 재배되지 못하고 극소수만 생산되어 귀족들만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중에 중국 기후에 맞게 개량된 것을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가져왔을 것이라고 한다. 면직물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알렉산더가 인도를 원정할 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의 전리품에 면직물이 많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 목화를 재배하기는 어려워서 수입된 면직물 완성품만 유럽에 전해졌다.

이렇게 인류에게 입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던 목화가 미국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미국에 지울 수 없는 성장통을 가져다준 남북전쟁이 목화 때문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가 강우량도 적당하여 목화 경작지로 적임지가 되었으며, 때마침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방직 기계로 면직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면화를 주요 방직 재료로 쓰던 때라 면화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이 수요를 감당하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부에 목화밭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갔다. 목화를 많이 생산하면 큰돈이 되는 좋은 작물이었으나 노동력이 매우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목화를 키우는 데에도 사람의 힘이 많이 필요했지만, 목화 열매에서 씨앗과 솜을 분리하는 작업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씨앗을 솜에서 분리하자면 사람 손으로 일일이 까야 했다. 이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결국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1793년 엘리 휘트니(Eli Whitney)라는 사람이 씨앗과 솜을 쉽게 분리하는 기계를 발명해서 씨를 발려내는 작업은 수월해졌으나, 이 때문에 경작면적이 급속히 넓어지면서 농장주들은 더욱더 많은 노예를 필요로 했다.

노예제도를 늦게까지 고수하던 미국 남부 지방은 모든 역량이 노예제도를 지키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남부인들의 철천지원수가 되는 분위기였다. 목화 농장이 별로 없고 산업 시설이 많이 있던 미국 북부 지방은 노예제도에 대해 회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세계 각국의 이목을 두려워했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가다가 결국 양쪽의 감정 대립이 무력 충돌로 발전하고 말았다.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노예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된 탓도 있지만, 때마침 목화에 생긴 해충 때문에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은 황폐해졌다. 바구미의 일종인 이 해충 때문에 미국 남부의 모든 목화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목화 농사는 지력을 많이 소모 시키기 때문에 목화밭은 더욱 황폐해졌다. 때마침 생겨난 땅콩 재배 덕분에 목화밭을 땅콩밭으로 바꿀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모든 목화밭이 땅콩밭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미국 면화 생산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면, 세계의 면화 생산량 순위에서 미국이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아직도 퍽 많은 목화밭이 미국 남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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