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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전설의 오페라 디바 '칼라스'

이병임 / 무용평론가
이병임 / 무용평론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9/17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09/16 18:49

그리스인 요르고스 칼로게로풀로스는 1923년 여름 임신한 아내와 함께 신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미국 맨해튼 땅을 밟는다. 4개월 후 이들은 딸을 출산하고 이름을 마리아로 명명한다. 그리고 얼마 후 발음하기 어려운 자신들의 그리스 성을 칼라스(Callas)로 개명한다.

지난 16일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오페라 최고의 디바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42주기였다.

자녀 교육에 매우 극성스러웠던 어머니는 세 살 때 마리아의 남다른 노래 재능을 알게 된다. 고지식하고 소시민적인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예술을 동경했으며 귀족적 삶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머니는 풍족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도 외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은 마리아에게 '억지로' 성악을 가르쳤다. 불화가 잦았던 부부는 결국 별거에 들어가고 어머니는 어린 마리아를 데리고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 성악가의 길을 가게 한다.

어머니를 닮아 성격이 강했던 마리아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어머니와 자주 부닥쳤다. 그녀는 훗날 원치 않던 노래 공부를 강요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들을 자주 토해냈다. 자식들의 미래에 관하여 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을 금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은 재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질곡 어린 삶의 절규가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로 표현될 때 그 감동은 청중의 영혼을 움직인다. 아픈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가수의 아리아는 그저 읊조리는 노래에 불과하다.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적 재능은 분명 어머니의 치마 폭에서 잉태되었고 본인 스스로 '학대'로 표현했던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그로 인한 끊임없는 갈등은 그녀의 운명적 대성을 예고하는 자양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비관적인 인생관이 10대 소녀 마리아를 오로지 음악에만 몰입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칼라스가 오페라 가수로 대성할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레나타 테발디라는 숙명의 라이벌이 있었다. 테발디가 정통 이탈리아 소프라노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을 무렵, 칼라스는 신예에 불과했다. 1950년 2월 칼라스는 꿈의 무대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 처음 서게 된다. '아이다' 공연을 앞두고 갑자기 병이 난 테발디의 대타로서였다.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계에는 칼라스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칼라스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테발디의 질투와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가해진 노골적인 차별을 견뎌내며 칼라스는 굳건히 자신 만의 독자적 아성을 구축한다.

말년에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못다한 사랑이 주된 원인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외곽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그녀는 오나시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약물과 수면제 과다 복용이 원인이 되어 1977년 9월 16일 심장마비로 55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삶 자체가 드라마였고 오페라였다.

이번 주만큼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자 했던 칼라스의 음악에 취해 보자. 그녀는 가고 없지만 전설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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