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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하나쯤은 최고를 지니고 싶다

조성자 / 시인
조성자 / 시인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9/18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9/09/17 17:09

어머니는, 옷은 떨어진 걸 입어도 구두/ 만큼은 비싼 걸 신어야 한다 아버지는, 소고기는/ 몰라도 돼지고기만큼은 최고 비싼 걸 먹어야 한다/ 그렇다 화장하다 만 듯 사는 친구는, 생리대만은 최고급이다/ (...) 가장 비싼 것 하나쯤엔 서슴없이 값을 치르니 귀함이 가장/ 싼 셈, 숨만큼은 정말 제대로 비싼 값을 치르는 것

-김경미 시인의 '질 -改作' 부분



삼 년 일본 근무를 마치고 다음 근무지인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로 떠나야 하는 아들이 차를 새로 샀다. 사막이나 산비탈 어디든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지프 종류의 빨간색 차다. "캘리포니아 날씨와 잘 어울리겠네"라고 내가 말하자 남편은 "나도 이런 차 타 보고 싶다"라고 한다. 웬 분수 모르는 생각이냐고 일갈 하고 돌아서는데 맘이 짠하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있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도 아버지 이전에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낭만적 기질의 남자였다는 생각을 아내인 나는 좀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씩 젊은 날의 객기가 발동되어 새삼스런 욕구를 내비치면 그때마다 객쩍은 생각 그만하라는 핀잔이나 했었다.

한때 그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해서 LP음반 사 모으는데 열심이던 때가 있었다. 미국으로 오면서 대부분은 처분을 했지만 백여 장의 레코드는 가지고 왔다. 미국에 와서도 몇 번인가 이사를 할 때마다 애물단지라고 눈총을 주면서도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이유는 방음장치가 잘 된 음악실에 최고의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갖춰 놓고 음악을 듣고 싶은 기대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로망은 있는 법,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을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고 있는 모양이다.

분수껏 사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는 하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최고를 지니고 싶어 한다. 할머니는 사람은 입성이 좋아야 한다며 옷을 잘 입기를 원하셨다. 다른 것은 아껴도 비단옷 한 벌은 지녀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수수한 사람을 좋아하고 수수한 삶을 지향하지만 부엌만큼은 최고를 갖고 싶다. 부엌에서 빵도 굽지만 글도 쓸 수 있도록 앞창이 넓게 탁 트여 멀리까지 바라다 보이는 카페 같은 최상의 부엌을 상상하곤 한다.

원하는 것이나 갖고 싶은 걸 다 갖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생활은 늘 부족하고 기대치에 이르지 못 한다. 생활의 여력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많을지라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말 좋아하는 것 하나쯤 최고의 것을 누리는 호사를 경험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이 생활의 파격이야말로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커피만큼은 스타벅스 카페라테를 마신다는 친구를 괜한 허영심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한도 안에서 날마다 최고를 누린다는 기쁨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다고 해서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삶은 바라는 만큼 주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고를 가져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정말 그 최고를 원한다면 그 최고를 얻기 위한 대가를 즐겁게 치를 것이다. 욕망이 삶의 질을 전적으로 개작할 수는 없겠지만 답답한 일상을 호기롭게 헤쳐 가는 방편이 되기는 할 터이다. 스스로의 정신적.정서적 품위를 위해서 하나쯤은 비싼 값을 치를 준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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