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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아침 8시, 감기 기운에도 30분을 달려 코스트코에 도착했다. 10시 오픈인데 이미 700명 정도가 우산을 쓴 채 줄을 서 있고 계속 들어오는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아침부터 1000명이 줄을 선다는 말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두 시간을 기다린 후 들어갈 차례가 되자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곧장 화장지가 진열된 곳으로 달렸다. 1인당 한 팩씩으로 제한된 화장지는 이미 동이 났고 그 옆에 키친타월만 몇 개 남아 있었다. 그것이라도 일단 급히 집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팬데믹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바이러스가 발견된 지 세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재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소비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는 일종의 정신적 위로를 느끼기 위함이다. 화장지는 먹는 것도 아니고 먹고 난 다음 뒤처리로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싸우면서까지 집착을 하는 행위 역시 같은 종류이다. 팬데믹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인 만큼 나라마다 심리적 현상 또한 비이성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위기가 닥치면 아시안은 쌀, 멕시칸은 콩, 독일은 분유, 러시안은 보드카 등 항상 똑같은 현상이 온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가장 공포스러움을 주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1346년 비단길을 따라 흘러들어온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지금의 현실은 그때처럼 매일 죽음이 삶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혹자는 이때가 바로 서구의 중세문화에서 중요한 명상의 하나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기라고 한다. 명상을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우주와 신의 질서를 깨닫는 정신 단련을 하라는 거다. 하지만 인류의 삶이 파괴되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는 이런 말은 조금 빗나가지 않나 싶다. 매초마다 죽음의 숫자가 치솟는 상황에선 메멘토 모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죽음에서 빠져나오느냐가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오늘 아침 신문에는 미국인 청년의 사진이 크게 찍혀서 올라왔다. 자신이 평소 모아둔 돈으로 산 1000개의 화장지를 지나가는 자동차에 나눠주는 장면이다. 맥도널드가 무료로 배달을 하는가 하면 수백 개의 쌀부대를 실어다 주는 한인도 있고 배고픈 홈리스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선한 사마리안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인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저스, 빌 게이츠 등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답을 기술에서 찾겠다며 ‘뉴테크 리더십’을 내놓았다. 이렇게 지원하고, 나눠주고, 기를 쓰며 소매를 걷어 올리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들의 도시는 다시 안전한 삶의 터전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꼈던 물건들이 갑자기 헛것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위한 삶이었나 신산 고초의 나날들도 한낱 덧없게 여겨진다. 진열대에 화장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듯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바이러스 하나가 세상을 딸깍 멈춰버리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눈과 귀가 온통 죽음의 숫자에 쏠려있는 나날이지만, 사상 유례없는 질병으로 세계가 충격과 혼란에 빠져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정국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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