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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추석이 온다지만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풋콩 밀어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 노루들이 좋아 지내네. 저 달빛에 꽃 가지도 휘시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숲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 깔깔거리네….

추석 전날 대청마루에 두리 판을 사이로 둘러앉아 고운 한복에 아주까리기름으로 단정히 머리 손질하신 옛날 어머니들의 송편 빚으시는 모습이 눈가를 촉촉이 적시게 하는 서정주의 ‘추석 전날 송편 빚을 때’라는 시다.

이렇게 올해 추석은 다음 주 목요일 10월 1일에 온다. 작년 추석이 9월 13일이었음을 상기해 볼 때 금년은 거의 20일 늦게 오는 셈이다.

어린 시절 추석은 마냥 좋고 즐겁기만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일 년 중 설빔, 추석빔 두 번만 얻어 입는 새 옷과 양말 신발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옷이라야 무명으로 지은 검은색 국민 교복으로 한 벌 사면 다음 설까지 입고 견디는 것이 조건부다. 그 옷을 입고 학교도 가고 공차기도 하고 때로는 소꼴을 베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입다 보면 소매는 훔친 콧물 자국으로 인해 반들반들하다. 거기에 공생하자며 숨어든 동물이 진을 치는 데 그것이 이나 벼룩이다. 그래서 저녁때가 되면 식구들이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이를 잡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공생동물의 반칙이다. 당시 학교는 조회시간에 학생들을 운동장에 줄 세운 뒤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가 이어졌는데, 이때 등 쪽의 따스한 겨울 햇볕에 취한 공생동물이 숨어지내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실밥 사이를 비집고 나와 교복 등판을 아래위로 부지런히 활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동장은 여기저기 학생들의 쿡쿡 웃음 참는 소음으로 가득해진다.



당시 양말은 낙하산표 나일론이었고 신발은 부잣집 아들 몇몇 외에는 대부분은 타이어표 통고무신이었다. 아무리 질긴 낙하산 실로 만든 양말이라도 수명은 있기 마련이다. 한 켤레로 줄곧 견디다 보면 처음은 발뒤꿈치에 구멍이 생기고 이어서 발바닥 전체를 관통하면서 양말이 발등 덮개로 변모한다. 문제는 가만히 서 있으면 표가 잘 안 나지만 걷거나 달리다 보면 발등 덮개가 신발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지만 설날까지 견디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은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추석인 한가위는 신라 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왕의 두 딸이 7월 16일부터 6부의 행정처에 속한 가솔의 부녀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길쌈 내기를 하게 한 뒤 대보름날인 8월 15일 고관대작 앞에서 품평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뒤 패한 팀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팀을 대접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적마경기(績麻競技)이고 이날 남녀노소가 모여 노래와 춤 등 온갖 놀이를 하며 즐겼는데 이것을 가배(嘉排)라 불렀는데 뜻은 ‘한가운데’로 오늘날 한가위다.

2020년 한가위는 우울한 명절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고향 방문길이 코로나 확산의 위험으로 많이 취소되어서다.

지난 9개월 동안 방역수칙에 매여 불안 속에 찌들었던 민초들이 추석 하루라도 고향 친지들과 함께 큰달을 쳐다보며 기쁨과 감사의 가배(嘉排)제절로 지키려 했을 것인데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솔잎 냄새 함께 참기름 자르르 바른 어머니표 송편의 쫄깃한 감칠맛을 회상하며 마음으로 고향길을 대신하자.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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