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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얘기] 아모르 파티, 내 삶을 사랑하기(2)

운명을 사랑하고 고통을 승화해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긴 사람 하나 더 소개한다. 약 2100년 전 중국 한나라 시대 얘기다. 그는 역사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서적과 이야기, 설화 등을 접했으며, 천문과 역법을 연구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36살에 황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부서의 책임자로 부임했다. 타고난 지혜로 천문과 달력에 밝고 고전에도 통달해 모두에게 인정받던 시절, 하지만 49세에 삶의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당시 황제의 기세에 눌려 누구도 감히 직언을 못 하던 조정에서, 흉노에 투항한 장수를 변호하다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선고받게 된 것. 궁형이란 한나라 최고의 형벌로써 남자는 생식기를 제거하고 여자는 질을 폐쇄하여 아이를 못 낳게 만드는 형벌이다.

최고형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50만전이란 거액을 벌금으로 내거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형 대신 궁형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는 큰 치욕으로 대부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생식기가 제거되는 치욕과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구걸한 이유로, 중국 최고의 역사서를 완성하란 아버지의 유언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 56세로 죽을 때까지 생물학적 인간의 존엄을 포기한 상태에서 고통과 주위의 비웃음 속에 놀라운 투혼으로 위대한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서의 하나로 꼽히는 사기는 중국의 역사 기록은 물론 당시의 철학, 사상, 문학을 포괄하는 인류의 고전이다.



또한 사기는 오래전 인류의 생활방식과 그들의 삶을 연구하기 위한 인간학 교과서로도 많이 읽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승화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철학적 경지에 도달했으며, 자신만의 삶 창조를 이뤄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포함 중국 3천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학자 ‘사마천’ 얘기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명한 사자성어 ‘구우일모(九牛一毛)’를 인용한 글을 통해 자신의 힘든 심경과 소신을 털어놨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은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다” 고. 궁형의 치욕으로 육체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내 안의 가슴속 내면을 통해 빛나는 창조를 이룩해내기 위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육체를 거세당하고 삶을 거세당한 상태에서,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그 고통을 오히려 창조로 승화해 자신의 삶을 완성한 셈이다.

사마천만큼이나 힘든 삶은 살다간 니체가 “운명을 사랑하라”고 한 것은 사실 아이러니다. 오랜 만성 질병에 시달리며 잠시 일했던 학교의 연금으로 어렵게 연명했던 사람. 유일한 사랑 ‘살로메’ 와의 청혼도 거절당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간 사람. 기존의 모든 철학자의 생각을 뛰어넘는 ‘시한폭탄’ 과 같은 사상으로 당시 주류사회에서 외톨이로 따돌림받던 사람. 그만의 특별한 삶 철학이 없었다면, 자신을 배반한 운명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표현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따지고 보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통스럽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기. 그것이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영적 사상에 비슷한 표현이 있다. “삶에 저항하지 마라”.

삶을 내가 소유하려고 할 수록 고통이 심화된다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라는 말이다. 버스를 간발 차이로 놓친 건 기사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그 버스는 그 시간에 떠나게 되어있었다. 단지 다음 버스시간 보다 조금 일찍왔을 뿐이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내가 내 맘대로 세상을 소유하려는 순간 고통이 찾아온다는 얘기다.

자신의 삶 ‘그 자체’를 갖고자 원하는 것이 ‘아모르 파티’ 이다.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의 고통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당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사랑하고 껴안는 것이 ‘내 삶을 사랑하기’다.

내 삶에 고통이 있으므로 내가 더욱 성장하고 강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연마된 삶이 나를 고귀하게 만든다. 어떻게? 바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창조를 통해서다. 창조로 삶의 고통을 가볍게 하기다. 내 삶을 ‘작품’으로 완성하기다. 내 삶을 예술작품으로 간주한다면 내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경험과 고통은 훌륭한 작품 소재다. 이 고통과 좌절을 한데 묶어 작품을 만들어보기다. 작품이 완성되고 삶의 목적이 완성되는 순간, 고통은 창조로 ‘승화’ 된다.

승화란 현상이나 상태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킴을 말한다. 승화를 위해서는 이중의 균형 잡기가 필요하다. 고통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통제하기다. 고통을 능동적으로 받아들면서 동시에 굳은 의지를 갖기다. 이 의지를 위해서는 이미 얘기한 대로 뚜렷한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삶에서 고통과 실패를 극복하려면, 이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니체의 역설이 바로 승화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부가할 수 있는 힘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내면에서 자신의 고유한 궁핍을 만들어낼 줄도 알게 된다.” 현대철학은 그 덕분에 살아왔고, 여전히 그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주인공. 니체의 육성이다.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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