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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상대 후보는 ‘적’이 아니다

“그는 명예로운 군인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충분히 우리의 감사를 받을 만한 분입니다.”

대선을 한 달 앞둔 2008년 10월 10일 당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지지자 대회에서 상대 후보인 공화당 존 매케인을 두고 한 말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 후보를 내놓고 칭찬한 것이다. 한 표가 간절한 선거 막판에 캠페인 매니저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그 사람 아랍 사람 맞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는 선량한 시민이자 한 가족의 가장입니다. 다만 정치적 대결에서 기본적인 철학을 저와 달리할 뿐이지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다음날인 11일 한 타운홀 미팅에서 한 여성 지지자가 오바마의 출생에 대해 묻자 매케인 후보가 내놓은 답변이다.

매케인은 그해 8월 28일 민주당이 오바마를 대선 후보로 세우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

“경쟁을 하다 보면 상대 경쟁자의 성취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바마의 후보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말 역사적인 성취라고 봅니다.”

12년이 지났고 매케인은 고인이 됐다.

“이런 난국에는 아무래도 ‘계획’이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동시에 군대에 간 나의 두 아들이 ‘패배자’로 불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매케인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3주 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하며 내놓은 이유다. 치열한 선거전에 양당 인사들이 ‘복도를 넘어(over the aisle)’ 상대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들은 종종 있어왔다.

신디 매케인의 영상을 다시 보며 2008년 오바마와 매케인의 발언들이 떠올라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예능에서 쓰는 말로 ‘창피함은 내 몫’이었을까. 대다수 미국인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매케인의 이웃과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 사이에서 고민했을 신디 매케인의 번뇌도 느껴진다. 공화당적 가치를 평생 지녀온 그의 가족이 계속 공화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 환경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혹 이런 것들을 트럼프 대통령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물론 조 바이든과 존 매케인이 상원에서 활동할 때 경험도 반영이 됐다고 한다. 동시에 신디 매케인은 카말라 해리스와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활동을 함께했다고 하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설득이 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미국은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빨리 구조적인 틀을 마련해 강대국이 됐다. 풍부한 자원과 군사력도 있겠지만 삼권분립과 정치적 선명성을 가진 위정자들이 주춧돌이 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이런 전통과 가치들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의 부름에 총을 들고 참전했던 순수한 군인들의 명예까지 의심한다면 백악관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유권자들의 선택은 냉정하다. 지지율 차이는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더 일할 수도 있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이 될 수 있지만 정권은 언제든 냉정한 심판을 받고 바뀔 수 있다. 그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어떤 정책으로 국가 살림을 이끌어 가더라도 미국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보호하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리더가 나오길 기대한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리더를 젊은 유권자들이 나서서 뽑아주길 바란다.

2018년 9월 매케인의 장례식에서 오바마가 한 말이다.

“나와 경쟁했던 매케인 의원은 나를 더 나은 대통령이 되게 했다.”


최인성 / 디지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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