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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버지니아 스코티쉬 게임과 축제

예전에 ‘앨라배마 하이랜드 게임’이 몽고메리의 아름다운 셰익스피어 연극장 앞 공원에서 해마다 열렸다. 여러 지역에서 찾아온 선수들과 백파이퍼들에 스코틀랜드 후손들이 각 씨족의 독특한 킬트를 입고 참석해서 한판 신나게 벌린 화끈한 민속 축제였다. 선수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 게임을 보여줬고 백파이퍼들은 깊고 부드러운 화음을 공원에 퍼뜨리며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켈틱 노래를 듣고 민속춤을 보았고 스코틀랜드 음식과 민속품 까지 구입했다. 이 축제를 후원했던 스폰서가 세상을 떠난 후 이 행사는 몽고메리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푸른 공원에서 백파이퍼의 은은한 멜로디에 취하던 즐거움을 잃어 아쉽다가 언젠가 사우스 캐롤라이나 여행중 챨스톤 근교의 한 농장에서 하이랜드 게임을 보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북 버지니아의 광활한 목초지에서 ‘버지니아 스코티쉬 게임과 축제’를 봤다. 특히 스코티쉬 후손인 큰사위가 소속된 워싱턴디시의 스코티쉬 사회도 참여한 행사이고 아이의 이름을 스코티쉬로 지어줄 만큼 사위의 대단한 스코티쉬 사랑이 온 가족을 흥분시켰다. 46년째 열리는 이곳 행사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볼거리들이 많아서 아이나 어른 모두 즐겁게 들판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민자로서 고국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이민 3-4세대를 지나서도 옛 조상들이 떠나온 먼 곳의 풍습을 아끼고 사랑하는 후손들이 있는 스코티쉬 사회는 미국의 어느 이민사회보다 막강하게 피로 뭉친 단체다. 이민 1세인 남편과 나의 모국 사랑을 후대들이 이어주지 못함이 아쉬운 터에 남의 민속축제에서 흥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음악무대에서 켈틱 노래를 부른 그룹, Chambless & Muse가 앨라배마에서 온 음악인들이라 조금 위로가 됐다. 그들이 부른 애잔한 민요에 눈시울이 젖다가 이어진 낙관적인 노래에 웃음을 터뜨렸다.

중앙에 마련된 운동장에서 전국에서 온 6척이 넘는 장신의 거대한 남자선수들이 쇠뭉치 멀리 던지기와 긴 전봇대를 던져 뒤집는 게임에서 힘과 묘기를 보다가 대거 참여한 여성 선수들에 눈길이 끌렸다. 모두 플러스 사이즈인 그들이 긴 전봇대를 잡고 던지려고 혼신을 기울일 적마다 내 손에 땀이 흘렀다. 그리고 들판 한쪽에서 주인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양들을 이리 저리 몰아오는 재능을 자랑하던 양치기 개들과 함께 선보인 스코티쉬 전통 개들이 귀여웠고 전통 무용을 보며 슬쩍 흉내 내고 싶었지만 내 몸이 무거웠다. 부드러운 피들 연주로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민속품을 파는 텐트를 기웃거리다 맛있는 전통음식을 먹었다. 위스키 시음장은 남자들이 좋아했고 아이들에게 전통 게임을 소개하는 곳에서 아이는 줄을 섰다.



살아있는 역사장에서 컬러풀한 전통 의복을 입은 봉사자들이 열성적으로 오랫동안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압박을 주었던 영국과의 투쟁에서 스코틀랜드의 민족성을 지켜온 피의 역사를 설명했다. 돌아서다가 웃음이 나왔다. 바로 맞은편에 당당하게 죽 전시된 고전 자동차들이 모두 영국산이었다. 좌석이 좁은 한 자동차에 타서 여왕처럼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사진을 찍으며 나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의 씨족 독특한 색깔의 체크무늬 타탄을 걸치고 킬트를 입고 당당한 스코틀랜드 후손들을 보며 눈이 부시게 푸른 스코틀랜드 북부의 야생 들판을 상기했다. 깊은 계곡을 지나온 거친 바람소리가 버지니아 목초지를 휩쓸고 있는 착각도 들었다. 사위가 “주로 백인들의 축제인 이 행사에 갈수록 찾아오는 동양인들이 많은 이유를 아느냐?” 물었다. 남편이 즉석에서 한국계인 내가 켈틱 음악에 심취하듯이 무엇인가 동양인들의 정서와 맞물리는 것이 있나보다 했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흑인들은 안 보여도 동양인들은 더러 눈에 띄었다. 스코틀랜드와 동양인들의 민족성과 풍습에 공통점이 무엇인지 나도 궁금했다.

켈틱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동장 여기저기서 열리는 전통 게임의 무지막지한 야생적인 마력에 끌려들었다. 원초적인 반응이지만 남의 나라 민속축제가 마치 내 모국의 민속축제처럼 흥겨웠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더니 다민족 사회에서 오래 살았던 세월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켰다. 버지니아 스코티쉬 축제는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에 국적과 피부색은 장애가 아님을 확신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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