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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추석을 망치는 대화의 기술

추석이 끝난 후에는 '추석 명절 후 이혼 두 배로 늘어' '가족 모임에서 주먹다짐이' 같은 기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렇다 보니 으레 '따뜻한 대화 위한 7가지 원칙' '명절 스트레스 줄이는 대화법' 같은 류의 특집도 명절 전에 나온다.

그러나 평소에 하던 대로 해야지 괜히 어색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공감의 리액션을 하며 기술을 구사해봤자 오히려 역효과가 나온다. 안 하던 걸 갑자기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숱하게 반복한, 남은 다 아는데 나만 몰랐던 자신의 추석 망치는 기술을 점검해보는 게 낫겠다.

첫째, 가장 빈도 높게 사용되는 추석 망치는 기술은 충고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 뭔가를 이야기하고 뿌듯해 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나오는 충고 대부분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것이다. 특히 상대의 말을 충분히 안 듣고 처음 나오는 몇 마디만 듣고는 말 끊기 신공과 함께 충고 필살기를 구사할 때 효과가 더욱 커진다. 여기에 본인이 우월한 척하기 위해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덧붙이면 상대를 부끄럽게 만들고 위축시키니 추석을 망치고 싶다면 고려해 볼만 하다.

둘째, 잘못된 위안이다. 물론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겠으나 현실에 근거한 적절한 위로여야 하는데, 무조건 "다 잘 될 거야. 염려 마" 하는 건 무책임하다. 상대로서는 내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위로는커녕 자기 고민을 가볍게 여긴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줄 수 있다. 특히 약간 톤을 높여 건성으로 "그거 괜찮다고 했잖아"라고 하면 "이제 그런 말 좀 하지마"로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셋째, 꼬인 질문이다. "좀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생각해 본 적 없니?" 이건 누가 들어도 지금 불성실하다고 비꼬는 거다. "이렇게 전을 잘 부치는 애가 평소에도 좀 하지 그러니?" 이런 비꼬는 질문은 전을 뒤집는 게 아니라 밥상을 뒤집게 할 수 있다. 향후 추석에 얼굴 안 보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비꼬는 질문이 효과적일 것이다.

넷째, 캐묻기다. 상대방이 답하기 곤란한 질문으로 취조함으로써 상처에 소금 닿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너 몇 등이나 하니? 어느 대학 갈 거니?", 학교 졸업 후에는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취업 후에는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결혼 후에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출산 후에는 "둘째는 언제 낳을 거니?" 하는 식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기술이 있으나 다섯째로 혼자만 즐거운 개그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아재 개그가 무슨 죄인가? 나누면서 즐거운 이들과 밤새 하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는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끝없이 강요하는 데 있다. "자꾸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라고 할 필요 없다. 미안하면 안 하면 된다.

끝으로, 이번 추석에는 장관 임명에 대한 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불꽃 튀게 부딪힐 것이다. 흔히 명절에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하나 필자는 반대다. 정치 이야기를 해서 문제가 아니라 정치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해서 문제인 거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런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살아온 시대적 상황에서 저런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하고 이해하면 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건 그 주장이 다 맞다고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라, 저렇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야 대화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이길 강요하지 말 일이며 상대방이 틀렸다며 내 의견에 굴복시키지 말 일이다. 나만 맞다고 강요하는 것, 명절 사단의 지름길이다.

추석은 함께 즐기기 위한 시간이다.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혹시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받고 희생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입에서 말이 나오려는 순간, 한 호흡 멈추고 상대방 말을 좀 더 잘 듣고 난 후 한 번 더 생각해 말을 꺼내야 한다.


송인한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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