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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식당 메뉴 변신은 '무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짜장면이 최고였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인근 식당에 들어서면 한쪽 면을 도배하듯 포진한 메뉴판에는 무려 30~40개가 넘는 음식 이름이 즐비했다. 한식에 중식은 물론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까지 있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푸드코트 메뉴가 식당 한 곳에서 다 해결되는 수준이었다.

돌아보면 주방에서 만들어내는 요리의 숫자가 풍요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던 시절이었던 듯하다. 어린 입맛에 그 모든 음식은 맛있었고 즐거웠다.

지난주 '의외의 메뉴'를 장착한 음료점과 식당을 소개하는 기자의 기사에 한 지인이 속 깊은 피드백을 내놓았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고. 풀리지 않은 경기에 숱한 고민이 아니었으면 그런 메뉴가 나오겠어. 그래도 커피점은 진한 커피향으로 승부를 걸고, 한식당은 진정한 한식 양념으로 손님을 끌어야 맞지 않나? 뭔가를 팔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게 진정한 승부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이지…."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의외의 메뉴에 휘둘리다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업소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고객의 발길을 끌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다.

난데없는 메뉴를 내놓는 업소들도 나름의 변명은 있다. 한인타운의 한 업소 매니저는 '고객들의 관심'을 변의 핵심으로 꼽았다.

"기존 메뉴를 고수하며 전통 맛집의 자리를 지키는 업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결국 고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생존할 수 있는 업소들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인데… 새 메뉴,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메뉴를 만드는 것은 일단 기존 손님들에 대한 보답이며 주방 입장에서는 생산적인 도전이라고 봐야합니다. 한번 먹으면 또 먹을 것 같지 않은 아주 매운 떡볶이, 누가 먹겠느냐 싶은 희한한 지중해식 양념, 커피점에서 퍼지는 매운 고추 냄새는 그런 이유들이 배경이죠. 그 메뉴가 인기를 끌고, 매출 증대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는 사실 그 다음의 문제라고 봅니다."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손님들은 당연히 새로운 것을 바란다. 손님들은 종종 기존 메뉴에 뭔가를 추가하거나 빼면서 자신들의 입맛을 충족시킨다. 더 맵게, 더 향긋하게, 때론 더 이상하게 만들어 먹고 싶어한다. 이런 손님들의 욕구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메뉴를 자주 추가하거나 바꾸는 업소들의 설명이다. 막대한 홍보 및 광고 비용을 최대한 활용하자면 이런 메뉴는 거의 '필수'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방대한 세계 각국의 요리 역사와 자료를 집대성한 조너선 골드는 생전에 퓨전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밝혀 시선을 끌었다.

특히 그는 한국 음식이 미국에 들어와 2~3세를 거치면서 입맛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으며, 앞으로도 한식 퓨전은 조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평양식 냉면은 평양식대로, 간장게장은 고소한 간장 맛대로 퓨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동서고금의 요리를 섭렵해온 그도 전통과 변형에 대한 고민을 적잖게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정처없고 근거 없는 음식으로 도전하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업소는 시골 외할머니 부엌이 아니며 음식은 손자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한인업소들을 가득 메운 수많은 타인종 고객들의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다. 굳건한 바탕 위에 얹는 의외의 메뉴는 생존 전략이자 고객에 대한 '정식 구애'다. 당당하게 내놓자.


최인성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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