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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포기 말고…'삼일작행'으로 이겨보자

새해 목표·결심 올해는…

1년 전체 큰 계획보다는
3일마다 작심 행동 옮겨
관성 깨는 강한 외부 힘
디테일한 목표 설정해야
'한방' 아닌 끊임없는 반복
습관 대차대조표 항상 생각


새해 들어 일주일이 지났다. 빠르면 지난 연말, 또는 새해가 시작된 지난주 많은 이들이 작심(作心)을 했다. 이른바 새해 계획. 일부는 지난주 계획했던 바를 실천하고 있고, 일부는 실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수인 후자 그룹에서 나오는 탄식은 '작심삼일(三日)'이다. 삼일, 시간상으로는 72시간. 수면시간 7시간 X 3일=21시간을 빼면(72-21) 50시간 남짓이다. 사실 새해 첫주는 인사, 만남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작심한 일을 실천으로 옮기기 힘들다. 그래서 보통은 다음주, 즉 새해 두 번째 주를 '작심 실천'의 출발점으로 본다. 바로 오늘이다. 아마도 어젯밤 작심의 각오를 다지느라 설레어서 잠 못 든 사람이 많았으리라. 새해 목표를 '세우고 무너지기' 수십 년을 반복하면서 '그냥 이대로'로 살기로 낙담하는 우리. 작심삼일,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작심삼일

많은 사람이 '새해'라는 외부 요인을 이용해 습관을 깨려고 한다. 하지만, 새해라는 찰나의 시점을 '변화의 힘'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약하다. 흐르는 시간에 기댈 수는 없다.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떤 습관을 들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던가.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많은 시간과 학습의 노력을 송두리째 버리는 일일 수 있다.

작심삼일은 자연의 이치다. 그깟 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창피하거나 낙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작심삼일 한 것이 너무 한심하다고 자책하는가. 그렇다면, 맹자의 호변장을 읽어야 한다. 여기에 따르면 작심삼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1) 처음 결심이 흐지부지된다는 뜻이 있다. 또 하나는 2) 사흘을 두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한다는 뜻이다.

앞에 것이 일관성에 관한 것이라면, 뒤에 것은 신중성에 관한 것이다. 맹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작심(作心)하려면 먼저 신중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초지일관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신중하게 작심하는 것이 중요하고 삼일을 유지하는 것은 다음 문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삼일(3일)'만 덜렁 남았다. 마치 삼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바뀌는 것처럼. 결코, 삼일 동안에 무언가 확 바뀔 수는 없다. 작심삼일, 당연하다. 주눅 들지 마라. 제대로 작심했다면 그깟 삼일 아니 삼십 일, 삼 년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단단하게 작심하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10년의 노력이 아니라, 단 하루의 '용기'다.

행동은 힘이다. 결과가 없다면 시도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작은 것, 쉬운 것,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고쳐나가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가랑비에 옷 젖고, 티끌 모아 태산은 진리다. 그 속에는 '~ing'가 들어있다. 결심은 몸짓으로 연결되고 반복해야 한다.

'삼일'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을 사흘이라는 시간적 한계에 닫아 두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차라리 사흘마다 매번 작심-계획과 결의를 다지는 것이 더 낫다.

작심삼일을 위한 작행(作行)을 100번만 계속하면 성공은 따라온다. 결심한 것을 단 3일만 이뤄라. 그리고 매 3일째마다 다시 시작하라. 조급함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3일만 참고 실천하고, 또 3일만 참고 반복을 거듭해야 한다. 이렇게 '삼일작행'이 연초의 계획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1년 계획이라는 긴 시간 계획은 삼일 만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삼일…삼일…삼일씩 단타로 치고 나가야 한다. 성공적인 삼일도 있겠지만, 실패한 삼일도 있으리라. 하지만 실패해봐야 삼일이다. 반대로 '삼일성공'의 성취감은 애초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완고한' 습관

습관(習慣): 익힐 습에, 익숙할 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따라서 '사소한 습관'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오랫동안 되풀이돼온 개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회, 문화, 종교적인 관습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습관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유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습관적이다. 생리적, 사회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동작이 일정한 사회 집단에서 고정화된 것이 습관이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행동은 안정적이다. 습관 형성은 효과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이다.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로서의 습관은 일종의 보호막(shield·방패)이 되는 셈이다. 습관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밥 먹는 것도, 배설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예의를 갖추는 것도, 대화를 주고 받는 것도 사실 다 습관이다.

물론 우리가 통상 말하는 습관은 '문제적 습관'이고, 이는 누구에게나 다 있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자동성' 즉 나도 모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획을 세우기 전에 나의 습관은 무엇인가를 철저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자신에게 어떤 습관이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변화 … 왜 어렵나

바꾸는 것은 어렵다. 습관은 오랫동안 해온 행위가 우리 안에 침전된 것이고, 이를 표출하는 행동이다. 모든 행동에는 '운동 3대 법칙'이 적용된다.

우선, 관성의 법칙이다. 사실 여기서 다 무너지고, 수포로 돌아간다. 구르는 돌은 계속 구르려고 한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갑자기 모든 것을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려고 한다. 새해 결심은 유독 '(하던 것을) 끊겠다'는 단절 동사에 집중된다. 돌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안 구르겠다'이다. 만물은 자기의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인간의 행동도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할 뿐이다.

두 번째는 가속도의 법칙. 흡연자가 금연을 결심하고 실천한다면, 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는 새로운 관성(금연)이 옛날의 관성(흡연)을 뛰어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내성화된 유전자는 그 옛날 단 한 번의 연기를 기억하고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멀대기 시작한다. 여기에 딱 한 번 불을 붙이는 순간, 놀랍도록 빠르게 번진다. '도로아미타불' 작심이 삼일 만에 끝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반작용의 법칙이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둘 땐, 저항·반발의 힘이 그만큼 세다. 잡념에 끌린다. '왜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에 이어, '(이 일을 했다고) so what?'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훅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해야하나

관성의 법칙을 깨는 방법은 강력한 외부의 힘이다. 구르는 공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우리 발이 가로막을 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담배를 끊게 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폐암 선고'가 될 수도 있다. 흡연을 죽음을 맞바꾸는 위치에 놓을 때 금연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불필요한 커피 마시기를 끊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커피가 사라지지 않은 이상 관성을 깰 만한 강력한 외부의 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습관이 더 무서운 이유다.

관성을 넘는 강력한 외부의 힘은 두 가지 요소를 꼭 갖춰야 한다. 1. 명확한(디테일한) 목표 설정 2. 한방이 아닌 무수한 펀치 등이다. 다이어트 하자는 명확한 목표가 아니다. 식생활 개선으로 4.5kg을 빼자는 게 목표를 세워야 한다. 관성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00번 이상 '역(逆)관성' 행동을 해야한다. 역관성 행동을 할 때 중요한 것은, '해야만 하는 이유'의 철학을 다시 정립하고 재작심하는 것이다. 행위의 대차대조표를 꼼꼼히 정리해봐야 한다. 인간의 변화 힘은 사실 내부(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속도와 반작용의 법칙을 깨는 방법은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표어에 담겨있다. 과거의 기억을 나쁜 추억으로 자주 곱씹어야 한다. 딱 한 번 좋게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했다면 바로 후회해야 한다. 대차대조표의 결론은 언제나 '손해'다. '불 질러봤자, 남는 것은 없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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