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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현기식'의 뜻 아시는 분, 손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2일 LA한인회가 주최한 한미 국기 게양식에 참석했다. 은빛 철모를 눌러 쓴 퇴역 군인 4명이 국가에 맞춰서 하늘 높이 국기를 올렸다. 한인 2세 아이들도 색동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양 국기를 흔들며 축하를 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겠지만 청년이 없는 한인 1세들만의 행사는 애처롭고 고립돼 보였다. 퇴역군인과 한인청년이 함께 국기를 올리는 모습을 연출할 수 없었을까 아쉽다.

행사 명칭은 '미주한인의날 기념 현기식'.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현기식이 무슨 말입니까?" 선배에게 물었다.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나 역시 10년차 기자이지만 '현기식'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네이버 검색에 물었다. 현기식이라는 단어는 없고 현기만 검색된다. 현기(眩氣):어지러운 기운. 현기(玄機):깊고 묘한 이치. 이런 뜻은 아닐테고. 해방 이전의 기사를 검색했다.

1929년 10월 14일 동아일보 아동면 기사다. "백여명의 척후대가 라렬하야 장엄한 현긔식(懸旗式)과 단가를 비롯하야 다음과 가튼 특색 잇는 운동으로 동여섯시반 폐회하얏다더라." 아이들 운동회 행사 기사다. 까까머리에 흰셔츠를 입은 단체사진도 한 장있다. 이 때 등장한 단어 현기식(懸旗式)! '달 현(懸)'에 '깃발 기(旗)' 자로 깃발을 다는 행사라는 뜻이다.

국립국어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해당 답변을 그대로 옮긴다. "특정 지역에서 해당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단어의 사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기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며 한자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그 뜻을 쉽게 유추하기가 어려우므로, '게양식' 등의 좀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기(懸旗)'의 최초 출현처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우나, 1600년대 문서인 "백주집(白洲集)", "동춘당집(同春堂集)" 등에서부터 '깃발을 걸다'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실제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미주 한인단체를 제외하고 한국에서는 화석화한 단어다. '현기식'이라는 희귀한 단어를 LA한인사회에서는 공식언어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LA한인회에 사문화한 단어를 고집한 이유를 물었다. 관계자는 "나도 이곳에 왔을 때야 처음 알게 된 단어다. 생소한 단어였다. 애국단체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 지켜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1942년 8월 29일, 일제 강점기 조국이 일본의 총칼에 무참히 짓밟히던 때 미주 한인들이 나서서 LA시청에서 태극기를 올리며 그날을 '태극기의 날'로 선포했으니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다만 그 역사적 사건은 '현기식'으로 그대로 지키되, 국기를 높이 올리는 행사는 보다 쉽게 '게양식'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아장아장 걸으며 행사에 참여해 태극기를 흔들던 2세 아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오늘을 유연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1세대들의 자신감이다.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고서는 악수도 포옹도 하지 못한다.


황상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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