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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복'의 정치학

쑨원 고안설 대세…이미 레닌ㆍ스탈린 착용
사회주의의 자존심ㆍ자긍심ㆍ정체성 깃들어
간소ㆍ간편한 옷차림 근대화 정책 일환 확산


김구 선생 등 독립 운동가도 즐겨 입어
한국서는 재건복, 새마을복으로 발전돼
현대화 변형 배우ㆍ아이돌 패션 아이템

지난해부터 올해 하노이까지 다섯 차례의 한미,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항상 '인민복' 차림으로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다소 촌스럽게 보이는 인민복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 옷일까. 중요한 정치 일정에서 지도자의 의복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또 최근 젊은 세대에 인기있는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2019년 봄 상품으로 인민복을 연상시키는 재킷(69.9달러)을 출시해 논란이 일으켰다. 인민복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봤다.

인인민복은 과거 중국의 마오쩌둥은 물론 구소련의 스탈린 등 동구권 및 아시아 공산권 국가 지도자들의 공식 의상으로 알려진 복장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물자 보급이 어려워지면서 전투복을 약간 개조해 일상복으로 만든 인민복은 사실 공산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겨울 코트 모양새다.

인민복은 공산당 지도자가 개발한 것은 아니다. 인민복은 중국의 국부라 일컫는 중산(中山) 쑨원(1866~1925) 선생이 1923년 고안했다. 민족의, 민권의, 민생의 중국을 제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상징한다. 중국 전통 복식에 서양의 옷을 응용해 만들었으며, 쑨원의 호를 따 '중산복'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화교들 사이에 유행되던 상의에 양복 와이셔츠식의 빳빳한 옷깃을 달았다. 이리하여 양복 상의와 와이셔츠의 작용을 겸비하게 됐다. 또 화교 복장의 3개 호주머니를 4개로 바꿔 실용성을 더했다. 아래쪽 두 개의 호주머니는 넣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부풀 수 있도록 주름을 넣었다.

쑨원을 도와 중산복을 만든 조수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던 황룽성이다. 황룽성은 쑨원에게 매료돼 혁명을 위해 힘쓰겠다고 했다. 이후 쑨원이 중산복을 설계할 때 황룽성은 기획과 재봉을 책임져 첫 번째 중산복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소련도 공산혁명 후 이런 옷을 즐겨 입은 걸로 봐서는 꼭 유래가 쑨원은 아닌 듯하다. 블라디미르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도 혁명 후 이런 옷을 즐겨 입었다. 사실 당시 제복 디자인은 대동소이했고, 간소하고 간편한 옷차림을 근대화 정책으로 퍼뜨리다 보니 군복과 비슷한 옷이 그대로 인민복으로 굳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민복은 사회주의국가 지도자의 상징이며, 원래 중국의 혁명성을 상징한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했을 당시 이 옷을 입었다. 이후 '마오 수트(Maosuit)'라고 불렸다.

인민복은 사회주의의 자존심과 자긍심 등 정체성이 깃들어 있는 옷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통솔할 때 가장 유용한 것이 유니폼이다. 대표적으로 교복과 군복일 것이다. 빈부의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고 계급을 나눠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며 동시에 확실한 소속감을 주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화된 뒤 중국인들 대부분이 인민복을 입었으며, 당 고위 간부도 공식 석상에 나올 때는 대부분 인민복 차림이었다. 예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은 여배우 공리의 출세작인데 당시 첫 데뷔했던 공리는 인민복 차림으로 외신과 기자회견을 했다. 현재의 공리를 보면 그런 모습이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중국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인민복 차림이었다.

공산당은 실용적이고 노동자 친화적인 옷이라며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아예 인민복 차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 때리거나 죽이는 상황까지 갔다.

인민복만 입도록 강요하다 보니 부작용이 매우 컸다. 배급 수량이 모자라도 다른 옷을 입을 수가 없어 세탁을 자주 하지 못해 비위생적인 상태로 지내야 했고, 여벌의 인민복을 받았다 해도 한 벌은 정장 대용으로 쓰기 위해 평소엔 입지 않고 놔두었기에 마찬가지로 위생 문제를 일으켰다. 맨 윗단추까지 항상 채워야 했기 때문에 불편했으며, 정장으로 입는 인민복은 빳빳하게 다림질하거나 각을 잡기 위해 실용성을 대거 희생하는 등 인민복 본래 기능을 잃기 일쑤였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입고 등장하는 인민복은 중국식 인민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인민복이 무늬가 없는 민자 형태인데 반해, 김정은이 입고 나오는 인민복은 옅은 세로줄이 새겨진 스트라이프 형태다.

북한에 관광을 가면 호텔 양복점에서 100달러 정도를 지불하면 북한 인민복을 맞춤복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1~2번 가봉을 하므로 3~4일 걸린다고 한다. 색상부터 주머니의 유무, 모양, 단추까지 자세히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하다고 한다.

인민복이 공산권 국가들만 입는 것은 아니다. 과거 김구 선생과 독립 운동가들이 종종 즐겨 입었다. 또한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도 비슷한 디자인을 즐겨 입어 '네루 수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 대전 말기 일본도 국민복이라 불린, 인민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게 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옷이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뒤 이승만 정부 때 남성들에게 검은색 인민복 형태의 복장을 권장하기도 했다. 또 5·16 군사정변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종필의 고안으로 재건복이 만들어졌다. 김종필 본인도 이 옷을 자주 입고 다녔다. 일본식 국민복에 미 육군 정복을 섞어 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60년대 초반 많은 공무원이 재건복을 입고 근무했다. 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재건복은 색상과 디자인을 살짝 바꿔서 밝은 톤의 새마을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70~80년대 드라마에 나오는 공무원이나 농촌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하늘색 또는 황토색의 허름한 옷이 바로 새마을복이다.

단순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인민복은 최근 변형되고 현대화되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걸 그룹까지 입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중국 유명 배우 유덕화도 즐겨 입는다고 한다.

패션의 변화는 사고의 변화다. 김정은 위원장이 향후 북미회담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그의 인민복 패션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복

영국산 명품 ‘스카발’
700~800만 원 이상


김정은 위원장이 입고 나온 인민복은 결코 전투복 원단으로 만든 저렴한 인민복이 아니다. 디자인은 평범한 인민복이지만 김 위원장이 입은 옷의 원단은 영국의 3대 명품 원단 브랜드 중 하나인 '스카발(SCABAL)' 브랜드의 원단으로 알려져있다. 스카발은 본래 벨기에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지만, 원단 공장이 영국 허더즈필드에 있어 영국산 명품으로 손꼽히게 된 고급 브랜드다.

약 130kg 이상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의 몸무게와 이에 따른 풍채를 고려하면, 김 위원장의 인민복 제작에는 스카발 원단이 최소 4m 이상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며 원단 금액만 우리 돈으로 약 400만원 이상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옷 제작비용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700만~800만원 이상 들어간 고급 옷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 인민복 복장은 옆선이 비스듬히 휘어진 상태로 보이는데 이는 복부비만을 가리면서 편안하게 있기 위한 디자인이 들어갔기 때문으로 알려져있다. 바지통은 통풍을 위해 아주 넓은 편이며 역시 비만으로 인한 팔자걸음이 잘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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