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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세월

김외출

어느 대학병원 수술실 앞이다. 병원의 전광판에는 '박00 수술 중'이라고 문자가 떠있다. 큰아들과 나는 양손에 땀을 쥔 채 불안에 떨며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고희를 넘었지만 젊은이도 힘들다는 MTB(산악자전거)를 타다가 그만 넘어져서 왼쪽 팔 다리에는 외상을 입고 어깨뼈가 크게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여느 때 같으면 남편이 라이딩 떠나는 날은 경건한 마음으로 집에서 그의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그날은 며칠 전부터 남편과 사소한 일로 인해 티격태격하다가 심기가 불편해져 있던 터라 기도는커녕 미운 생각 뿐이었는데 막상 사고를 당하고 보니 나의 원망이 그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40년 동안 부대끼며 살았으니 그만하면 나도 이제 관대해져야 할 나이가 지났건만 아직도 편협한 성격은 여전하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안절부절 못하면서 수술결과를 기다리자니 일각이 여삼추였다. 3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전광판에 그의 이름이 수술에서 회복으로 바뀌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회복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전신마취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얼마 후 그가 창백한 얼굴로 카에 실려 통증을 이기지 못해 연방 신음소리를 냈다. 본인이야 고통스러워 그러겠지만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잠시나마 함께 한 동병상련의 환자가족들에게 속으로 행운을 빌며 수술실 앞을 떠났다.



병실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그러나 한쪽 팔을 못 움직이는 환자를 간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무통 주사를 놓는데도 통증이 심해서 어린 아이 마냥 보챌 땐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과로에 불면증까지 겹쳐 피로가 쌓이더니 몸살 감기에 걸려 바깥 온도가 30도를 넘는 날씨에도 한기가 들어 내의를 입고 견디었다. 의사들은 남편이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덕인지 나이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에 퇴원을 했다.

평소 그는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암벽등반 스키 등 격렬한 운동을 골라 했다. 내가 여러 번 만류해 보았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동아리 회원들과 집을 떠나면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내 여린 마음은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스키사고로 병원 출입이 잦았고 수영장에서 목을 다쳐서 오랫동안 입원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원망도 많이 했지만 종래에는 내 분복 탓으로 돌려버렸다. 하지만 이번처럼 수술을 해야 하는 사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이도 젊었을 때는 가장으로 삶의 무게를 느끼며 힘들게 살아왔다. 그 덕에 애들은 별 탈 없이 자라서 제 몫은 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시절 다 보 내고 얼굴엔 골 깊은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엔 안개꽃이 하얗게 피고 보니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어하는 눈치다.

낙엽의 길목에선 인생을 보다 아름답고 뜻있게 살겠다는 그의 소망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 그가 운동중독증에 걸린 것 같아 걱정스럽다.

스포츠 의학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럴 때 운동중독증에 해당한다고 한다. 운동을 거르면 불안 초조 우울 불쾌감 등이 나타나며 주 7일간 쉬는 날 없이 꼬박 운동을 하거나 하루 두 번씩도 한다. 운동할 때 그리고 하고 난 뒤 어떤 경우보다 가장 행복을 느낀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피로 골절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을 때 등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이가 틀림없이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아서 성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해야 할까….

그가 레저에 푹 빠져 바람처럼 떠돌 때 두 아들마저 제 둥지를 찾아 떠나 버렸다. 나는 혼자서 외로움과 고독에 떨며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을 혼자 달래야 했다. 따라나서고도 싶었지만 운동을 싫어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 학창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문학의 작은 불씨가 나의 내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그 공허한 마음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만이 내가 외롭지 않게 살아 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되어 수필에 입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의 별난 취미생활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으니 원망보다는 고마워 해야 할까 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향기 같은 좋은 글을 쓰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

철인 같이 날뛰던 남편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십 년 전 그의 회갑 때만 해도 전국에서 동호인 50여 명이 모여 강원도 고성 어느 바다 속에서 수중회갑연을 열었다. 가끔 수중 결혼식 기록은 있어도 바다 속에서 회갑연을 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TV 방송국에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토록 즐겨하던 운동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씩 둘씩 인연을 끊어가고 있다. 스포츠 마니아의 꿈을 접어야만 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우울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뉘라 거역할 수 있을까.

하루의 찬란한 소임을 마치고 서쪽 하늘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우러르니 인생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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