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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채터박스'의 대북 옵션

클럽이나 술집 가운데 가장 흔한 이름이 '채터박스(chatterbox)'다. 우리말로는 '수다방'이 제일 가깝다.

주거니 받거니 몇 잔 들이키다 보면 수다를 떨게 된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LA 한인타운에도 '채터박스'란 술집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온갖 루머가 이곳에서 굴러 다녀 역기능도 적지 않았지만 사회정화 노릇도 톡톡히 해냈다.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총영사가 채터박스에 밉보여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쫓겨났으니. 군사정권시절 얘기다.

수다는 술집에서만 떠는 게 아니다. 한인사회가 커짐에 따라 여기저기서 채터박스가 생겨났다.



학교 동창끼리, 교회 신자끼리, 동네 친구끼리, 직장 동료끼리. 이렇게 끼리 끼리 모여 수다방이 형성된다. 더구나 수다가 치매방지에 특효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 채터박스는 단연 한반도 사태가 지배하는 분위기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신문에서 읽은 기사에 자신의 견해까지 덧붙여 저마다 안보에 대한 식견이 전문가 빰친다.

엊그제 식당에서 가진 채터박스 모임에서도 전쟁이 메뉴판 상단에 올랐다. A씨가 귀가 번쩍 띄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어떻게 할까. 남북대화를 할까.

참석자들은 '노'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왜? 지구촌 최강자와 힘자랑을 하고 있는데 남쪽과 말을 섞으면 '쪽' 팔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럼 언제까지 미사일을 쏴대고 핵실험을 해댈까. 미국이 "이제 그만, 협상을 하자"고 나올 때까지다. 핵보유국 인정받고, 평화협정 맺고, 평양과 워싱턴에 대사관 세우고.

김정은은 미국 뿐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도 벌이고 있다. 질질 끌면 국제사회의 올가미(경제 제재)가 턱 밑까지 죄어들어 불리하다. 그래서 내가 김정은이라면 속전속결, 미사일을 죄다 쏴 올릴게 틀림없다.

그럼 내가 트럼프라면? 다들 '전쟁 절대 못한다'에 내기를 걸었다.

미국이 제아무리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북한에 취할 수 있는 군사옵션이 있다고 해도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 터.

전쟁도 안 되고, 김정은의 요구도 들어줄 수 없고. 이번에도 A씨가 입을 열었다. "1905년의 교훈을 잊지마세요." 이른바 '태프트-카츠라 밀약'이 나온 해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는 대신 일본은 필리핀을 넘보지 않는다는 메모 쪽지다.

그 때처럼 트럼프와 시진핑이 밀거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미군을 남한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중국은 김정은과 핵 미사일을 패키지로 날려버린다는 시나리오다.

미군이 없는 한반도는 결국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되고. 그래도 남한과 미국은 혈맹인데. 동맹 보단 자국의 안보 이익이 우선이라는 게 트럼프의 대외정책 아닌가.

어쨌거나 미군 철수는 최악의 경우다. 그럼 어떻게? 미국에 더 찰떡처럼 달라붙는 것이다. 이 판국에 전시 작전권 돌려받아 봤자다.

2차세계대전 때 호주가 그랬다. 일본군의 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존 커틴 총리가 결단을 내렸다. 미군사령관에 작전권을 줘 버린 것. 그땐 미군이 한 명도 없었는데도. '우리가 미국 속국이냐' 논란이 불거지자 이런 말로 야당의원들을 다독였다. "우리가 미군을 볼모로 잡았다고 생각하자." 명언 아닌가.

그날 채터박스 모임의 결론은 이랬다.

"우리도 미군을 인질로 삼아 위기에서 벗어나자." 황당한 얘기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다수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우리같은 평범한 다수가 탁월한 소수(전문가)보다 현명하다는 뜻이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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