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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산책길, 인생길

김영애 / 수필가

집을 나선다. 안에만 머물던 눈을 잠시 바깥세상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우리 눈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자신의 내부를 성찰하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내다보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산보는 잠시 집을 떠나는, 불가의 출가(出家)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해질 무렵이면 매일 한 번씩 하는 출가. 번뇌에 얽매인 세속 인연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길에 오른다. 어깨를 누르던 현실을 벗어던지고 마음의 번뇌를 삭발한 뒤 자유로운 수도 길을 나선다.

산책을 하다 보면 삶의 길을 걷는 것 같다. 생의 한가운데서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을 해후하듯 넓고 편안한 저택을 마주하는가 하면, 삶의 모퉁이에서 답답하고 옹색한 이를 만나듯 좁고 초라한 집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사람처럼 굳게 닫힌 집을 보기도 하고, 가슴이 열린 사람처럼 환한 불빛 아래 활짝 열린 집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삶의 시계 속에 초침 같은 걸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스쳐가듯 여러 집을 지나간다.

집을 사람의 풍채라 한다면, 그 내면을 사람마다의 영혼과 캐릭터라고 하면 어떨까. 그리 보면 나는 산보를 통해 매일 각기 다른 영혼을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조우하는 것이다.



사시나무가 반짝이는 길모퉁이를 돌자, 날선 바람이 예리하게 가슴을 찌른다. 초가을 바람에는 영혼을 때리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회초리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유한한 인생을 사유케 하며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바람처럼 삶도 가난한 영혼과 부유한 영혼이 한꺼번에 합쳐졌다 풍성하게 나누어지면 어떨까. 가슴 속의 크고 작은 번뇌들도 바람 되어 뭉쳤다 흩어지면서 새털같이 가벼워지면 어떠할까. 그리하여 삶의 짐을 힘들게 진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나의 바람이 되어 싱그럽게 삶을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산책길은 인생의 여로처럼 그 생김새가 각양각색이다. 예측 못한 장애로 넘어질 뻔한 인생길마냥, 나무뿌리가 갑자기 솟아 발을 다칠 뻔한 보도가 있는가 하면, 평화로운 인생길같이 평탄히 열린 길도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은 한평생 삶을 걷다 그것이 끝나면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한바탕 산보일 것도 같다.

한동안 산보를 하다 거친 길과 편안한 길을 분별심 없이 무심히 걷고 있는 자신을 알아냈다. 거친 산책길과 평탄한 산보 길의 근본이 하나이듯, 인생길도 험하든 평탄하든 그 근원이 다르지 않을 듯싶다. 거칠든 평안하든 하나같이 소중한 삶. 그러기에 한바탕의 산책길인 인생살이도,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매순간을 행복으로 채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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