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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그러고 나서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우리가 자주 틀리는 맞춤법 중에 '그러고 나서'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의 접속어는 어원적으로 명확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런데'는 '그러한데'가 줄어든 말이고, '그래서'는 '그렇게 해서'가 준 말이다. '그러나'는 '그러하나'와 관련이 있고, '하지만'은 '~을 하지만'과 '따라서'는 '~을 따라서'와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라는 말은 '그렇게 하여'가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리하다'가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원래 어떤 명확한 의미를 갖고 있던 어휘가 주로 문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예를 문법화라고 한다.

'그리고'라는 말은 '그리하고'가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다'라는 어휘와 '그리고'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다'의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다'나 '누구를 그리워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리고 나서'라는 말을 쓸 때는 접속어 '그리고'에 '나서'가 붙은 말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접속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리고 나서'라는 말을 굳이 해석하자면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라는 의미이거나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나서'라는 의미에 해당하게 된다. 이는 원래 '그렇게 하고 나서'라는 말을 하려는 의도와는 전혀 달리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의도와 다르므로 당연히 틀린 표현이다.

여기에서 올바른 표현은 '그리고 나서'가 아니라 '그러고 나서'이다. 이는 '그렇게 하고 나서'라는 의미다. 즉 앞에 나온 행위를 다시 받아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를 만났다. 그러고 나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와 같이 표현해야 맞다. 여기에서 그러고는 만나고의 뜻이 된다. 그러고 나서가 맞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나서라고 쓴다. 어떤 때는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이는 우리가 접속어 그리고의 힘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맞춤법의 오류가 일어나는 경우는 이 외에도 많다. 특히 화자가 그런 단어려니 생각하고, 때로는 확신을 갖고 오류를 재 생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잘 안 고쳐진다. 본인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연히 고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인 실수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그러고 나서'는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당연히 '그리고'일 것이라 확신함에서 오는 오류다.



또 다른 오류의 예로는 '어이없다'가 있다. 어이없다는 말은 '어처구니없다'는 말로 특별히 틀릴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어의없다'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확신에 차서 틀린다. 어의를 한자어 어의(語義) 정도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낭떠러지'의 경우도 '낭떨어지'로 확신에 찬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떨어지다'라는 어휘의 형태에 사로잡혀서 '낭떠러지'가 이상하게 보이는 현상이다. 이 경우에도 명확하게 본인의 오류를 바로잡지 않으면 계속 오류를 범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세상도 그렇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 속에서 내 생각이 맞는다고 말한다. 때에 따라서는 남들은 내가 다 틀렸다고 이야기하지만 믿지를 않는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내가 모르고 하는 일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냥 세상을 지내게 된다. 내 확신을 종종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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