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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나의 뿌리

박향숙 / 수필가

나의 뿌리가 부모님인줄 알고 살았다. 부모님이 계시고 태어난 곳이 고향인줄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을 알아가는 일을 즐거움으로 갖고 있는 남편 덕에 여러 도시를 살았다. 남편은 한 도시에 한 5년 쯤 살고 나면 근질근질 한지 다른 도시를 향해 더듬이를 뻗고는 했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것의 탐구욕이지만 막말하자면 역마살(?)이다. 한 도시에 정착을 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교회가 내 교회가 될 즈음이면 기필코 짐을 싸고 한국에서 미국오기보다 더 복잡한 대륙을 가로지르며 이사를 하고는 했다. 심지어는 한국으로도 지난 35년간에 두 번이나 이사를 갔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큰 반대 없이 이사를 다니고는 했다. 아이들이 생소한 곳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헤아려 보지 않고 당연히 가장의 결정을 따라 짐을 싸고는 했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는 나도 아이들도 싫어서 그냥 살던 곳에서 살겠노라고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남편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일단 남편이 방향을 정하면 남편은 채찍만 휘두르며 우리를 떠밀진 않았다. 적절히 당근도 주면서, 저쪽 어느 주는 물가도 싸서 정말 좋은 지역에 좋은 집을 살 수도 있고 그 지역 최고의 학교에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당근을 흔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여행을 통한 현지답사를 시키며 정말 살고 싶은 만족할 만한 곳을 보여주며 우리를 설득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으로 두 번이나 이사를 갔을 때는 더 이상 미국에서 엉터리 영어를 하면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알아듣는 척 안하고 살아도 된다고 하며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렇게 35년 동안 아이들과 나는 남편의 더듬이 방향을 따라 10번이나 미 대륙과 한국을 오가며 흡사 풀을 찾아 움직이는 유목민처럼 옮겨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사하고 짐을 풀어 오래 산집처럼 꾸미는 데는 일가견을 갖게 되어 이젠 누가 타주로 이사 한다면 실생활의 이삿짐 싸기의 달인이 되어 노하우를 전수하게 됐다.



그런데 15년 전 아이들이 대학을 가며 뉴욕으로 돌아왔다. 처음의 출발지가 뉴욕이었으니 20년 만에 고향 같은 뉴욕으로 돌아 온 셈이다. 그렇게 좀 더 나은 삶을 쫓아 돌아다니던 남편이 5년쯤 살았는데 아무 말이 없어서 이번엔 내가 근질근질 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우리 이사 할 때 된 거 아니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뉴욕에 있는데 어떻게 이사를 하겠느냐, 아이들이 뉴욕서 공부를 하니 공부나 끝날 때까지 참자고 한다. 좀 싱거워진 나는 그럼 몇 년 더 있다가 짐을 싸겠구나 생각 했다. 그리고 또 5년이 지나서 남편의 역마살이 내게 옮겨 붙었는지 근질근질 짐 싸고 싶은 맘이 마구 들은 어느 날 남편 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이번에도 애들이 뉴욕에서 일하고 있으니 결혼이나 시키면 떠나자고 도리어 날 설득했다. 이렇게 또 5년이 지나 뉴욕의 생활이 15년이 되었지만 남편의 더듬이는 이리저리 더듬기만 했지 우린 그대로 뉴욕에 있다.

어느날 난 우리가 맘속에 다른 도시를 품고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자식들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때야 부모 따라 다녔지만 이젠 사회인이 되어 자릴 잡았으니 우리 따라 떠날리 만무 하다는 걸 남편은 벌써 눈치 채고 스스로 역마살을 잠재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식의 뿌리인줄 알았는데 이민 온 우리들에겐 자식이 있는 곳이 고향이고 자식이 내 뿌리인 것이다. 이렇게 자식 언저리를 맴돌며 자식 옆에 살고자 하는 건 고향을 떠날 수 없고 내 뿌리가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편은 날마다 떠나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며 눈을 반짝이기도 하지만 난 이제 알고 있다. 더 이상 대륙횡단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들면 귀소 본능이 더 강하다는데, 남편의 귀소 본능이 든든한 뿌리와 고향인 아이들을 떠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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